WTC 붕괴 직전 무사 탈출한 유리창닦이 옷과 도구
삶을 확인시킨 증거물로 스미소니언박물관이 소장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국립 역사박물관은 최근 새로 입수한 보물 하나를 언론에 공개했다. 마치 귀한 보석처럼 파란색 식탁보 위에 조심스레 진열된 이 보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큐레이터인 데이비드 셰이트는 지난 4개월 동안 공을 들인 끝에 주인으로부터 이 보물을 기증 받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뉴저지의 저지시티에 있는 기증자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침실에서 그것을 가져 나왔다. 그러면서 ‘내 생명을 구해준 물건이라 베개 밑에 두고 지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바로 그 물건은 예술품도, 무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희귀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국립 역사박물관이 탐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기 힘든 물건이다. 실용주의의 승리라고 해도 될 만큼 튼튼한 도구일 뿐이다. 녹슬지 않도록 놋쇠로 만들어진 이 ‘하찮은’ 물건은 그러나 원래의 목적과는 완전히 다른 용도로 쓰이는 바람에 특별히 유명세를 타게 됐다. 바로 지난해 9월11일, 주인인 고층 건물 창문닦이의 재치로 6명의 생명을 구한 유리창용 고무걸레의 핸들(squeegee)이다.
셰이트는 "핸들 자체로서 박물관 소장품이 된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증거로서 수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막대의 주인인 얀 뎀슈어는 1980년 폴란드에서 이민 온 48세의 고층빌딩 유리창 청소원이다. 그는 사고 당일 막대와 고무날을 연결시키는 철제 고정장치인 이 핸들을 사용해 다른 5명의 남자와 함께 연기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석고판을 뜯어내고, 50층의 화장실 벽에 구멍을 뚫은 후 끝도 없는 계단을 달려 내려와 빌딩이 무너지기 5분 전에 무역센터 북쪽 타워를 빠져 나왔다.
이후 뎀슈어는 그 핸들을 자신의 옷장에 보관해 왔다. 그 핸들에 아직도 묻어 있는 석고가루는 긴박했던 당시의 탈출상황을 생생히 떠올리게 해준다. 그 핸들은 또한 그의 14년 직장생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는 아직 직장으로 복귀할 만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셰이트에게서 연락을 받은 후 뎀슈어는 핸들을 스미소니언의 9.11 유물 컬렉션에 기증하기로 했고, 스미소니언 측은 날로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유물들 중 일부를 골라 테러리스트 공격 1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뎀슈어는 처음엔 그 날의 일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을 느꼈지만 이날 기자회견장에서는 매우 길게 9월11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이 95분 동안 겪었던 시련을 40분 동안 상세하게 묘사한 그는 침착하고 끈기 있으며 또 정확했다. 아마도 그의 이런 면이 그를 살렸을 것이다. 그때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면 결코 살아 나올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 날 뎀슈어는 차임 9시 직전 커피타임을 위해 일손을 놓았다. 그리고 고무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탔다. 5명의 남자와 함께 내려오던 중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크게 흔들리더니 추락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비상정지 단추를 눌렀고 그러자 인터콤을 통해 목소리가 들렸다.
뎀슈어는 그 목소리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91층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접속이 끊겼고 연기가 엘리베이터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탈출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지만 벽면이었다. 정해진 층에만 서도록 설계된 특급 엘리베이터여서 서는 층이 아닌 50층에는 그냥 50이란 숫자가 써진 벽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밀실공포가 밀려드는 악몽의 순간이었다.
한때 배관공 일을 했고 건설 노동자이기도 했던 뎀슈어는 그 벽이 석고판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닫고 막대걸레에서 뾰족한 고무날을 빼내 벽을 톱질하기 시작했다. 5명이 돌려가면서 구멍 뚫는 일을 계속했지만 뎀슈어 차례가 되었을 때 작업을 하던 중 그만 날을 밑으로 놓쳐버리고 말았다. 뎀슈어는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이번에는 고무걸레의 핸들을 사용해 석고판을 긁기 시작했다.
긁고, 차고, 차고 또 긁고 해서 마침내 벽이 뚫렸고 구멍을 통해 목욕탕으로 나온 그들을 소방관들의 지시에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12층에 왔을 때 큰 폭발음을 들었다는 뎀슈어는 "그땐 변전기가 터졌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남쪽 타워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6명이 살아 나오는데는 뎀슈어의 재치가 큰 몫을 했지만 정작 본인은 끝까지 겸손하다. "내가 구한 것은 아니다. 우린 모두 같이 일했다. 하지만 이 도구가 우릴 살린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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