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프전서 맹활약 A-10 전투기 디자인한 피에르 스프리
▶ 아날로그 방식으로 최고의 음질 내는 엔지니어로 변신
숲 속의 비포장 도로를 4분의1마일 정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피에르 스프리(64)의 집은 난장판 그 자체이다. 페인트는 다 벗겨졌고, 회벽도 군데군데 갈라져 있으며, 천장에는 두꺼운 합판이 금새라도 떨어져 내릴 듯하다. 거실 한 가운데에는 피아노가 있고, 테이블과 의자 위에는 전깃줄, 책, 각종 박스, 배터리와 신문, CD 더미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하지만 이 숲 속의 난장판이야말로 오디오와 전투기의 괴짜 천재로 일컬어지는 스프리의 집이자 사무실이자 녹음실이다. 뮤지션들의 녹음 스튜디오로 쓰이는 이 집을 처음 방문한 연주가들은 그 지저분함에 경악하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의심하지만 몇 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스프리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와 그의 천재성에 빠져들고 만다.
스프리는 사물을 예리하게 꿰뚫는 사고력과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고집으로 국방부와 음반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우선 그가 제조한 A-10 전투기 ‘야생 멧돼지’는 너무 못생겼고, 단순하고, 너무 싸구려라는 공군 장교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걸프전에서 이라크 탱크부대를 초토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가 하면 ‘CD리뷰’ 등 음악잡지의 평론가들은 정기적으로 스프리의 집에서 녹음되는 메이플쉐이드 스튜디오 출시 CD들의 음질을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가 녹음한 음반들은 마치 밴드가 거실에서 즉흥연주를 해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소리가 생생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음질은 그가 발명한 독특한 녹음장비와 요즘 음반 녹음의 필수 테크놀러지로 통하는 믹싱이나 더빙, 멀티트랙 등을 완전히 무시하는 그의 ‘원시적’ 기술에 의해 성취된 것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일반인들과 매우 다른 사고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은다. 스프리의 군사문제 컨설턴트인 재런 버크는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접근한다"고 말했고 스프리의 옛 국방부 동료들을 인터뷰했던 작가 로버트 코람은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위협적인 지능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스프리와 함께 국방부를 개혁하기 위한 반란을 도모했던 단짝 제임스 버튼은 "스프리는 뭔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집중력이 놀라워 다른 모든 것은 뒷전으로 밀려난다"고 말한다. 버튼은 1993년 저서 ‘펜타곤 전쟁’(The Pentagon Wars)에서 국방부에 반기를 들었던 자신들의 투쟁기를 상세히 기록했다.
버튼은 또 "스프리에게 모든 사물은 흑 아니면 백으로 명백히 나누어진다"면서 "국방부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대부분 그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스프리는 국방부의 엔지니어로서 F-15, F-16기 등 많은 전투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에도 늘 재즈의 세계를 가까이 하면서 많은 뮤지션 친구들을 사귀었다. 70년대 중반에는 녹음기계를 들고 클럽들을 돌면서 친구들의 연주를 녹음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세계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그는 "당시엔 오디오 매니어도 아니었고, 단순히 내가 듣는 좋은 음악들을 자료로 녹음해 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를 오디오광으로 만든 것은 국방부의 A-10 전투기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던 단짝 밥 딜저였다. 1980년대 초 국방부에서 해고당한 딜저는 자신의 엔지니어 기술을 값비싼 스테레오 턴테이블을 리모델하는데 사용했다. 1,000달러에 턴테이블이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스프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50달러에 주고 산 내 턴테이블도 똑같은 속도로 판을 돌린다"면서 비웃었다. 하지만 딜저가 자신의 거실에 설치해준 고음질 오디오 시스템의 소리를 들은 후 완전히 "개종됐다"고 한다.
당장 스프리는 클럽에서 녹음할 때 쓰는 자신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몇 년 후 또 다른 친구가 그를 오디오의 세계로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바로 가수 겸 피아니스트 셜리 혼이다. 스프리는 여러 번 그녀의 클럽연주를 녹음했는데 자신의 집에 있는 1911년산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쳐본 혼이 그 피아노로 연주하고 싶으며 그 연주를 스프리가 녹음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주말 음악 스튜디오 간판을 내걸었고 정상의 뮤지션들이 몰려 3년만에 풀타임으로 녹음실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음반업계에서도 국방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테크놀러지 숭배에 말려들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테크놀러지가 음악을 망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테크놀러지는 엔지니어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실력 없는 뮤지션도 마치 잘하는 것처럼 꾸며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그의 녹음 테크닉은 그가 만든 전투기만큼이나 간단하다. 32개 트랙이 아니라 2개의 트랙에 녹음을 하고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으로 한다. 그런 원시적인 방식에도 불구하고 색서폰 연주가인 클리포드 조던, 하니엣 불루이엣, 피아니스트 월터 데이비스 주니어가 그의 지저분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며 오디오 잡지들은 앞다투어 그가 녹음한 음반들에 대해 "상쾌하고 살아있는 사운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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