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기껏해야 12살 정도밖에 되어보이지 않는다." 쫓기는 탈레반 패잔병을 취재하면서 서방기자들이 한결같이 한 소리다.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200여만명의 양민이 학살됐다. 1960년대 중국에서는 더 끔찍한 사태가 발생했다. 수도 없이 많은 도시 주민들이 인민 재판을 받고 농촌으로 추방됐다. 근 10여년간 대륙을 휩쓴 이 광풍은 엄청난 인명을 집어 삼키고 소멸됐다.
크메르루즈의 대학살. 문화혁명의 천하대란. 이 두 사건은 20세기에 인류가 저지른 끔찍한 대학살로 기록된다. 이 두 참사는 그런데 한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0대가 주축이 된 젊은 세대가 인류학살의 전위부대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앙팡 테리블’이라는 표현은 이 경우 맞지 않는다. ‘악마적 10대’-. 이 표현도 적합치 않아 보인다. "젊은 세대의 맹목적 분노는 때로 인류학살의 형태로 표출된다. 이는 악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증거다." 이런 정의나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샤론을 이스라엘 수상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성급한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이다. 자살폭탄테러가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에서는 강경파의 목소리만 높아질 것이다."
유대인을 타겟으로한 자살테러공격이 파상적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공격과 함께 중동전역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이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내려진 역설적 진단이다. ‘분노한 젊은 세대’가 역시 이 진단의 키워드다. 그 분노한 세대는 아랍의 젊은 세대다.
혼돈과 사회적 불안. 점증하는 젊은 세대의 불만. 양자가 어떤 접점에서 만날 때 엄청난 화학반응을 보이면서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 거기다가 광신주의의 독단적 종교 이데올로기가 이들 젊은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주입될 때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해질 수 있다. 앞서 열거한 인류 대학살의 참사가 바로 그 경우다.
"전 세계의 군사독재체제는 대부분 아랍권에 몰려 있다. 아랍권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선거는 찾아 볼 수없다. 전 세계 정치범의 3분의2는 이슬람권에 몰려있다. 사형집행이 가장 많은 곳도 역시 이슬람권이다. 현재 전 세계의 30개 분쟁지역 중 28개지역이 아랍권 내지 이슬람 커뮤니티와 관계돼 있다." 아랍권 전체에 대한 정치적 조감이다.
경제적으로도 별 소망이 없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라크 바그다드에 이르기 까지 거리마다 차고 넘치는 인파는 젊은 남성 실업자 군상이다. 아랍 세계 전체를 통틀어 전체인구의 50% 정도가 25세 이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경우 출산은 이스라엘과의 전쟁 무기다. 그 결과 10여년 후면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등 점령지역에서 이스라엘인은 완전히 소수가 될 전망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아랍권 전체는 언제나 거대한 ‘폭탄 제조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는 좌절의 연속이다. 경제적으로도 어렵다. 거기다가 표현의 자유조차 없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원인 모를 분노에 치를 떨고 있는 것이다.
지도자 부재가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젊은 세대의 욕구 불만은 발전의 동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젊은 에너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분출될 때 이야기다.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지도자를 아랍세계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모든 문제를 서방, 특히 미국 탓으로 돌리는 교묘한 선동정치만 판치면서 젊은이들의 분노는 서방에 대한 맹목적 증오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랜 민족적 고난을 통해 인도에서는 간디와 네루 같은 지도자가 나왔다. 미국은 제퍼슨, 매디슨 같은 지도자를 배출했다. 아랍인들도 기나긴 고난의 세월을 겪어 왔다. 그런데 고작 야세르 아라파트나 사담 후세인 같은 지도자 밖에 없다는 말인가." 뉴욕타임스의 논객 니콜러스 크리스토프의 지적이다.
경제 발전, 민주주의 도입, 이스라엘과의 관계 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아랍권이다. 이 아랍권의 근본적 문제는 한마디로 지도자 부재라는 지적이다. 야세르 아라파트, 사담 후세인, 또 그 어떤 세속적 정치 지도자의 말에도 아랍의 젊은 세대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게 회교근본주의자들이다.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이 서방, 더 나아가 현대 문명 그 자체를 거부하는 호전적 회교광신주의자들의 목소리에 그들은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열광은 순교의 열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를 10대, 그것도 10대 소녀가 거짓된 순교의 희열에 떨며 인간폭탄이 돼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이다.
’자살폭탄테러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명권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한 논객의 예언이다. 틀린 예언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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