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체제 하 인권 신장 기대 못해
한국, 독일식 통일 고집할 필요 없어
북한이 "악의 축"으로 불리는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미국과의 대화를 자청하는가 하면 임동원 특사가 평양을 방문, 김정일과 면담하는 등 북한 문제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북한 관련 기구 중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작년 10월 만들어진 미 북한 인권 위원회(US Committee for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다. 이 단체는 민간 자본으로 설립됐지만 스티븐 솔라즈 전 연방하원의원,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 대사, 리처드 앨런 전 국가 안보 담당 보좌관 등 주요 구성 멤버가 전직 미 행정부 고위 관리거나 중견 의원으로 구성돼 있어 반관 반민 성격이 강하다. 프레드 이클레 북한 인권 위원장을 만나 현 한반도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눠 봤다. 이클레 위원장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 정책 담당 국방 차관을 지냈고 MIT, 하버드 대 교수를 지낸 군축 문제 전문가다.
-먼저 북한 인권 위원회 출범 목적과 지난 6개월 간 어떤 일을 해왔는지 말씀해 주시죠.
▲북한 인권위의 목적은 이름대로 북한의 인권 상황을 모니터 하는 것입니다. 북한 인권에 관한 정보를 가급적 많이 수집하는 것이 주 임무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 유럽의 북한 인권 옹호 단체들과 긴밀한 접촉을 갖고 정보를 교환해 왔습니다. 인권위 위원 중에 전직 의원도 있고 개인적으로 입법 행정부 인사들과 친분이 있어 이들과도 수시로 연락하고 있습니다.
-미국 이외에도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는 단체가 많습니까.
▲유럽에 2~3개, 일본 역시 2~3개, 한국에 여럿 있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닐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사회라 작은 정보도 캐내기가 어렵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구체적인 방법은 밝히기를 거부했다).
-김정일 체제 하에서 북한 인권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다소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최근 탈북자 25명이 베이징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해 자유를 찾은 일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마디로 쾌거입니다. 이들에게는 잘 된 일이나 아직도 북한에는 억압받고 자유에 굶주린 주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베이징에서 벌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 단속을 엄격히 하고 있는 데다 중국 측이 탈북자 돕는 것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세계 여론을 의식해 가까스로 서울로 보내주기는 했지만.
-중국 북부의 탈북자 현황도 주시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수십만의 탈북자가 만주 일대에서 고생하고 있으며 이 중 많은 사람들이 몽골로 건너가 한국 행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탈북자를 보는 미국 정부의 시각은 어떤 것입니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제대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유엔으로부터 난민 자격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탈북자 돕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중국이 이에 반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난민 자격 부여는 힘들 것으로 봅니다. 유엔은 그 동안 인도적인 관점에서 탈북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월남이 망하자 미국은 베트남 보트 피플을 난민으로 받아들여 미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중국 탈북자들에게도 이 같은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있을까요.
▲지금으로 봐서는 희박합니다. 우선 무엇보다 탈북자 본인들이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최근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북한 국경을 넘기가 전보다 쉬워졌다고 합니다.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사람들 중에도 몇 번씩 국경을 넘나든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북한 체제가 주민 통제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징조로 봐도 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주민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년 내 김정일 체제는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김정일 체제는 세계적으로 드문 기형 정권입니다. 현 체제로는 기아와 경제난 등 내우와 국제적 고립이라는 외환을 오래 견뎌내지 못합니다.
-1994년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도 김정일 체제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김정일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구체적 증거가 있습니까.
▲물론 예상보다 오래 갈 수도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니까요. 단지 현재의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구체적인 정황은 밝히기를 거부했다).
-중대한 체제 변화에 대해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김영삼 정부 때 독일 통일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나온 결론이 ‘독일 같은 선진국도 통일을 하니까 통일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더라. 현재 한국으로서는 그만한 돈을 감당한 능력이 없다. 따라서 통일은 서둘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일은 독일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식 통일이 아니라면 어떤 식 통일이 가능합니까.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동서독인의 자유 왕래는 물론 동서독간의 현격한 경제적 격차에도 불구, 마르크화를 1대1로 교환하게 했습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정책 때문에 통일 비용이 과도하게 들어간 것입니다. 남북한은 통일을 하더라도 당장 휴전선을 허물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의 투자 여건을 향상시켜 자체적으로 경제 발전이 이뤄진 후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 ‘미사일을 수출하는 북한 선박은 격침시킬 수도 있다’ 등등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 발언이 강경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 측 요청을 받아 들여 미 북한 관계가 개선될 전망이 있다고 봅니까.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도 계속 대북 강경 노선을 고수할 것입니다. 북한이 이를 수용할 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먼저 얘기한 것처럼 북한의 현 체제는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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