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공항에서 떠나면 비행기로 11시간 후 도착하는 런던은 히드류 공항에서부터 그 분위기가 달랐다. ‘미국의 큰집’ ‘신사의 나라’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였을까? 이집트 카이로를 다녀오던 길에 들른 영국의 관문은 다른 나라 공항의 그 왁자한 소음이 없었다. 옷차림들도 무겁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운전자들도 엄숙한 표정에 넥타이를 졸라 맨 반듯한 정장이다.
모든 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것이 시류를 거스르는 반항아적 기질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한때 전 세계를 좌지우지했던 나라라는 자존심이 살아서인지, 또 음울한 날씨가 대부분이어선지 고풍스런 거리를 지나는 영국인들의 표정은 대체로 무겁다. 미국인들이나 중동인들의 그 실실 잘 웃는 웃음을 보기가 힘들었다.
안내를 맡은 한인 가이드 이정호씨도 "젠틀맨은 런던에서는 실종됐다. 런던인들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런던의 도심지는 아무데나 버리는 담배꽁초나 노상방뇨, 쓰레기로 지저분하고 운전자들은 교통신호등도 안 지키며 최근 범죄율은 뉴욕에 비해서도 5배가 넘는다. 일부 구역은 1년 사이 45%나 범죄율이 급증했다.
그러나 역사가 짧은 미국에 사는 방문객들은 런던의 곳곳에서 고색 창연한 회색빛 석조건물과 금빛 찬란한 아름다운 궁전, 도심지를 녹색으로 만드는 널따란 공원들을 돌아보면서 ‘역시’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도시전체가 건축박물관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
방문객들이 필수 관광코스로 꼽는 곳은 웨스트민스터 궁전,엘리자베스 여왕이 거주하는 버킹검 궁전, 대영 박물관, 국회의사당, 다이애나 비가 이혼할 때까지 살았던 켄싱턴 가든, 영화 ‘1000일의 앤’이나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무어 등이 유폐되었다가 참수 당한 런던성,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가 결혼식을 올렸던 세인트 폴 성당, 대법원, 해저터널로 프랑스 파리까지 3시간에 달리는 기차를 타는 워털루역, 개폐식 다리로 유명한 타워브리지, 도보인만을 위한 흔들다리 밀레니엄 브리지, 유서 깊은 빅토리아 역, 유명 오페라가 연일 공연되는 로얄 알버트 극장 등 역사적인 건축물들과 테임즈강, 트라팔가 광장, 하이드팍, 그린팍, 세인트 제임스팍 등이다.
이중 가장 비중이 쏠리는 곳은 역시 고대 유물과 전 세계 인류 문화재를 거의 다 끌어 모아놓은 250년 역사의 대영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입을 쩍쩍 벌어지게 하는 각종 문화재나 유물, 예술품들이 거대한 박물관 지하와 지상층을 가득 가득 메우고 있다. 외국에서 온 방문객뿐 아니라 런던이나 영국 각지에서 온 초·중·고교생들까지 합쳐져서 이 박물관은 연일 북새통이다.
다이애나 비가 이집트인 도티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뒤 도티의 부친이 소유한 고급 백화점 체인 해로즈도 새로운 관광명소로 그 이름을 보탰다. 고급 샤핑가에 육중한 붉은 건물로 자리잡은 해로즈 백화점에는 그 사건 이후 다이애나와 도티의 사진을 나란히 전시한 기념 분수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 차선이라고는 한두 개가 고작인 거리 때문에 교통사정이 유럽에서 최악이지만 빨간색의 택시, 런던의 명물인 이층버스, 지하철(언더그라운드, 또는 튜브라고 함)을 잘 이용한다면 런던의 속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정식택시는 ‘블랙캡’이라고 하면 빈차는 ‘for hire’라는 램프가 켜져 있다. 미터기 금액대로 지불하면 되지만 사람 수나 가방 수에 따라 추가요금이 있고 심야나 공휴일에는 할증요금도 붙는다. 팁도 물론 따로 10% 정도. 너무 비싼 블랙캡보다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차를 가지고 영업하는 ‘미니캡’을 이용하면 훨씬 저렴하다.
런던 시내의 또 하나의 명물은 바로 런던 경찰. 눈에 띄는 야광 옷을 입고 총기도 없이 뒷짐지고 천천히 도보 순찰을 도는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이들은 ‘바비’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경찰의 자격은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아야 한다. ‘경찰이 빠른 걸음으로 다니거나 총기를 휴대하면 시민이 불안해하고 총기사용 범죄가 더 늘어난다’며 꾸준히 비무장을 주장하는 이들 경찰은 영국시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런던-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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