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하늘을 바라보면 거의 언제나 비행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길의 근방에 살기 때문인지 어떤 때는 2, 3대씩 보이기도 한다.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면 신기해하던 옛 습관이 남아 지금도 비행기를 보면 옆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무의식적 충동이 일어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국가 간의 교류는 하루가 다르게 활발해졌고, 해외여행도 빈번하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간접 체험이 늘었다해도 처음 외국에 나갈 때는 호기심과 긴장감만큼이나 문화 충격도 크다.
연암 박지원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에 불과한 책문에서 그 번화함을 보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의욕이 상실되고, 더 보기도 싫고, 곧장 돌아가고 싶어 온 몸이 화끈 달아올랐다고 열하일기에 적고 있다. 그는 남의 나라 한 귀퉁이에 서서, 이제 겨우 만 분의 일도 보지 못했는데 이런 헛된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자신의 시야가 좁은 탓이므로 모든 세상을 널리 바라볼 수 있는 석가여래의 혜안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게 보일 것이고 그러면 절로 부러움과 시기, 질투도 없을 것임을 깨닫는다.
우리보다 발전한 나라는 물론이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은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아니, 모든 질투심은 사람에 대한 질투로 귀결된다. 박지원이 부러워하는 것도 사실은 중국 자체가 아닌 중국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 비교대상은 주로 가까이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대상에게 질투를 느끼지는 않는다. 박지원은 상상 속 유럽의 어느 나라가 아니라 눈앞의 중국을 보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내가 아는, 나보다 나은 대상은 부러움을 일으키고, 부러움은 내적 고통을 유발한다.
박지원은 옆에 있는 장복을 돌아보며 "다시 태어난다면 중국에서 살고 싶으냐?"고 묻지만, 장복은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 싫다"고 대답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장복처럼 부러움의 대상을 깎아 내림으로써 위안을 얻기도 한다. 당시 조선보다 앞선 대국인 중국을 ‘되놈의 나라’라고 비하한 그의 말은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박지원은 장복의 대답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좁은 자존심을 탓하지도 한심함을 나무라지도 않은 이유는 무시함으로써 부러운 마음을 감추려는 장복의 심리를 읽은 탓이었을까. 시기나 질투 같은 미움의 감정은 마음을 공격적으로 만드는데 이는 그 대상으로 인해 자신이 불리해지거나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일종의 동물적 자기보호 본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마침 장님 하나가 비단 배낭을 어깨에 메고 손으로 월금을 타며 오는 것을 보고 박지원은 "아아, 그가 바로 평등안이 아닌가"라고 외친다. 남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해칠 수도 있는 부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으로 박지원은 장님의 시각을 발견했다.
평등안에는 모든 것을 봄으로써 얻는 평등안과 아무 것도 보지 않음으로써 얻는 평등안이 있다.
첫 번째 평등안은 견문과 교제를 넓혀 가까운 대상만을 자신과 비교하지 않고, 보다 나은 대상이 수없이 많음을 깨닫는 것이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전체 속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 평등안은 시각장애인처럼 자신의 앞 걸음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바깥 세계에는 일체 신경을 쓰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남이 자랑할 때 일부러 못 들은 척 하거나, 더 나은 위치의 사람과는 상대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대처방법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모든 것을 보는 것도, 아무 것도 보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둘 중 하나의 평등안을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평등한 심안을 갖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시각각 자극 받는 눈과 변덕스러운 마음을 평정시킬 심안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마음은 항상 풍랑 속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부러움은 생태계의 먹이 사슬과 같은 속성을 지녔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대상은 다른 대상을 부러워하는 존재일 뿐이고, 우리도 누군가로부터는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란 없기에 누구나 어느 면으로는 열등감을 느낀다. 마음을 얽어매는 사슬에서 해방되는 길은 질투나 시기 같은 부정적 에너지를 자신감과 노력이라는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시킬 때 가능하다. 평등한 심안이란 그러한 방법으로 부러움의 고리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평등한 심안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랑’이 최고의 진리임을 알고 있지만, 모든 사람을 변함 없이 사랑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다. 오죽하면 해박한 박지원도 장님의 눈을 평등안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겠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공감을 느낀다. 더구나 위인에게서 나와 다름없는 면모를 발견하면 출렁이던 감정이 누그러지기도 한다. 평등의식이 평등한 심안을 열 수도 있는 것이다.
부러움이 들 때마다 박지원을 떠올려 봐야겠다.
약력-’현대수필’로 등단. 작품집 "바람은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2000년 문예진흥원으로부터 "내일을 여는 젊은 작가"로 선정. 한국 문인협회, 재미 수필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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