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뉴욕패션 주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이면서 최신 트랜드의 발상지인 명성을 되찾기 위해 뉴욕 컬렉션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9/11 이후 경제불황의 여파는 패션산업에도 불어왔다.
각종 다양한 이벤트가 줄어들고 쇼 개최 장소가 업 타운과 다운 타운으로 양분됨으로써 이맘때면 온 거리가 패션 무드로 출렁이던 맨하탄 7 애비뉴는 한걸음 물러서 보였다.
이번 컬렉션에도 캘빈 클라인, 도나 카렌, 마크 제이콥스, 타미 힐피거, 캐롤라이나 헤레라 등 유명 디자이너들은 2002 가을·겨울 의상을 선보였다.
이러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중 이태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피에르 가르댕이 있다. 한국에 피에르 가르댕 브랜드가 처음 들어오던 80년대 초 그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신라호텔 영빈관 앞에서 남성용 잡지의 표지 인물로 촬영을 한 후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돌아서다가 들고있던 취재 노트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갈피에 끼워져 있던 자료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어떤 종이는 미풍에 살짝 날아서 멀리 떨어지기도 했다.
S물산과 피에르 가르댕 한국 지사에서 나온 20여명의 한국 사내들은 옆에 선 채 ‘어 어’ 소리만 지르고 멀거니 서있는데 은발의 신사 피에르 가르댕은 ‘백조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허리를 납신 굽혀 새하얀 종이 서너 장을 일일이, 멀리 떨어진 것까지 손으로 주워서는 당황해 서있는 내게 미소를 띄며 건네주었다. 대낮의 하얀 햇살아래 백짓장처럼 투명한 피부, 매너조차 일류구나 싶었다.
자신의 이름과 상표를 넥타이를 비롯, 자동차까지 붙인 세계 최고의 라이센스 부여자이자 비즈니스에도 성공한 피에르 가르댕은 이처럼 단 10분간을 만나도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분명히 남들과 구별되는 뛰어남, 예민함, 따스함이 있다.
그동안 뉴욕 컬렉션에는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 디자이너 서너 명이 수 년째 참여해왔고 한국에서 건너온 중견 디자이너들의 의상도 발표되고 있다.
98년 4월에는 지춘희·박윤수·김동순·루비나·한혜자 씨 5인이 공동 컬렉션을 갖기도 했고 2001년에는 김선자·홍미화 씨가 2인 컬렉션을 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이력서 위에 뉴욕 컬렉션에 참가했다는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서 온 듯 뉴욕 체류기간동안 샤핑, 혹은 달러를 사느라 다 보낸 사람도 있고 로칼 비즈니스맨의 저녁 초대에 마지못해 나와 건성으로 앉아있다 간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정말이지 바쁜 일정을 쪼개 뉴욕으로 와 무대 뒤에서 의상 한 점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열성을 다한 사람도 있다.
컬렉션에 소요된 엄청난 경비를 자비로 충당하기도 했지만 수출 진흥책의 일환으로 한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서 온 경우도 있었는데, 자기 위안책으로 참가하는 디자이너들은 뉴욕에 올 필요가 없다. 단 한푼이라도 달러를 왜 낭비하는가.
잠시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최근 1, 2년 사이에는 상설 쇼룸과 소호 매장을 열어 뉴요커의 반응을 지켜보며 조심스레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한국 디자이너들도 생기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한혜자씨는 지난 15일 뉴욕 데뷔 컬렉션을 가졌다. 아직 뉴욕 패션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뉴욕 포스트, 파이낸셜 타임스 등등 로칼 기자를 위한 런어웨이 앞자리가 텅텅 비어 쇼가 시작되기 직전 일반인으로 그 자리가 채워지는 것을 보았다. 발표작들이 좋았기에 아까운 기회구나 싶었다.
이들 용기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은, 미국은 위험하니 프랑스나 영국의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는 디자이너, 확실한 고객이 있는 한국을 절대 떠날 수 없는 디자이너들에 비해 마음이 열려있다. 보는 세계가 틀린 것이다.
세계 패션계에 도전장을 낸 그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자체 개발한 한국산 소재와 색상, 디자인으로 국제무대에 본격 진출할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자.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지는 시대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레테르를 달 그들은 우리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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