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커버스토리
▶ ’밀리면 죽는다’ 가격 후려치기
한인마켓들의 가격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마켓사람들의 말이 사실은 아니라고 해도 확실히 마진폭은 크게 줄었고, 제 돈 내고 쌀 사먹는 사람도 팍 줄어든 게 사실이다.
일단 소비자는 좋고, 마켓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마켓 과당경쟁이 소비자들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몇 달 전부터 주부들의 화제가 될 정도로 심해진 한인마켓간 가격경쟁은 최근 1년새 대형 마켓들이 잇달아 들어선 것이 일차 원인이다.
한인타운에는 5만 스케어피트 대형 갤러리아가 들어서면서 6파전 체제가 됐다. 가든그로브는 소유권이 바뀐 가주에 이어 한남이 새로 생겼고, 아씨도 이 달을 넘기지 않고 개장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가든그로브 도레미, 로랜하잇 아시아나는 퇴출됐다. 풀러튼 롯데는 멕시컨 마켓으로 전업했고, 로랜하잇 아시아나 자리에는 마켓간의 치열한 물밑 경쟁 끝에 ‘그린랜드’가 들어섰다. 이같은 지각변동 속에 업계에는 생존 차원의 가격전쟁이 불붙기 시작됐다. 그 여파는 이제 마켓뿐 아니라 도매업계, 농장에까지 연쇄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소비자만 빼고 다 밑진다
요즘 웬만한 한인마켓에서는 쌀 한 포가 1센트다. ‘일정 액수 이상 구매할 때’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원래 6달러99센트씩 하던 것들이다.
쌀, 라면, 갈비, 무, 배추 등 마켓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들은 마켓이 전략적으로 밑지고 판다. 손님을 끌기 위해서다. 썬 갈비를 파운드당 1달러79센트에 후려친다는 한국마켓 매니저 정상훈씨는 "갈비 써는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한다.
갤러리아 마켓 김영준은 한인마켓의 손익분기점을 매출의 20%로 잡았다. 그러나 과거 21~22%는 유지하던 마진이 요즘은 20%가 채 안 된다. 가령 매출액 200만 달러인 마켓이 유지되려면 마진이 40만달러는 되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한 마켓은 쌀로 손해보는 액수만 일주 7만∼8만 달러, 왕창 남겨야 할 핫 아이템인 갈비도 3,400달러 정도씩 밑진다고 한다. 파운드당 1달러70∼80센트에 들여오는 갈비를 제 값 받고 팔려면 손질하는 과정에서 빠지는 25%를 감안, 2달러26센트는 되야 하지만 실제로는 1달러99센트. 파운드당 27센트씩 밑진다고 보면, 70파운드들이 1박스를 주당 180박스씩 판다고 했을 때 갈비의 마이너스 마진은 3,400달러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업원 인건비, 렌트, 전기세 등 유지비를 제하고 나면 적자"라는 말과 "마켓에 붙은 상점들에서 들어오는 렌트 수입 없이는 마켓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농장은 어떤가. 18년 간 농장을 운영해온 ‘해바라기 농원’의 김영희 사장은 "마켓도 농장도 손해지만 거래처를 잃을 수는 없다"며 "물량을 많이 대는 조건으로 현상 유지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말한다. 구멍 뚫린 마진을 저가 물량공세로 땜질하는 게 한인 식품유통업계의 현주소다.
■품질 신뢰지수는?
너무 싸면 품질에 의심이 갈 수 있다. 도매업체 ‘태봉’의 신순기 사장은 "마켓 매니저들이 가격은 후려쳐도 품질은 까다롭게 본다"며 부인했으나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때도 있다. LA의 송태흥씨는 최근 타운 한 마켓에서 만두피와 냉면을 샀다가 기겁을 했다. 만두피는 썩었고 냉면은 뜯는 봉지마다 벌레가 기어다녔기 때문이다.
유통구조는 소비자←소매←도매←매뉴팩처다. 수입도매업체 ‘한미’의 판매담당 송영근씨에 따르면 싸게 팔아야 하는 압박을 받는 마켓들과 마진이 적더라도 팔고 봐야하는 도매업체는 유효기간을 적절히 이용한다. 유효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싸게 사서 세일로 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소비자와 도·소매의 이해관계에 모두 맞기 때문에 식품의 상태가 전혀 괜찮다면 ‘빅 딜’은 아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 도·소매업계는 매뉴팩처에 ‘가격에 맞춰 생산하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10달러 짜리 물건을 8달러에 만들라는 것은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편법은 없을까
쉬운 예로 파가 10단에 99센트다. 이것은 개수 단위지 중량 단위가 아니다. 밸리 플라자 마켓의 김종열 사장은 "5단과 10단이 무게가 똑같다면 어떤 것이 품질이 좋겠느냐"고 반문한다.
용량을 문제삼는 업계 관계자도 있다. 현지 포장하는 제품의 경우 이것은 아주 손쉽다. 가격을 낮게 책정하기 위해 5파운드 정량을 그보다 낮게 줄일 수 있지만 소비자는 ‘몇 파운드냐’보다는 ‘값이 얼마냐’에 주목한다. 가격을 턱없이 낮추니까 이렇게 “눈물겨운 의심도 받을 수 있다”고 한 업계 관계자는 지적한다.
■포화상태 마켓·싼 것만 찾는 고객
식품유통업계 관계자들은 한인 마켓이 포화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도매업체도 너무 많다. 마켓들은 가격 전쟁을 선포했고 도매업체는 마켓에 줄을 대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가운데 대형은 몸집을 더 크게 불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한남이 5개, 한국·갤러리아가 4개, 가주 4개, 아씨와 그린랜드가 각 2개 등. 최근 1∼2년 새 벌어진 일이다. 소비자들은 싼 가격에 익숙해졌고, 이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한번 내린 가격을 올리기란 힘들다. 마켓 매니저들은 “소비자들은 마켓마다 세일품목을 찾아다닐 정도로 세일을 밝힌다”며 혀를 내두른다.
도매업체 ‘한미’의 송영근씨는 "소비자부터 싼 것보다는 양질의 물건을 찾는 분위기를 정착시켜야 한다"며 "본인과 그 가족이 먹는 음식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sooh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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