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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한양대 임계순 교수의 역사서 ‘청사(淸史)’는 무식한 만주족 30만명이 유식한 한족 1억5,000만명과 56개 민족의 광대한 중국 대륙을 어떻게 통치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만주족은 임진왜란으로 조선(朝鮮)과 명(明), 일본이 쇄약해진 틈을 타서 만주를 통일한 후 명나라가 이자성의 반란으로 멸망하자, 중원을 공략했다. 청나라는 강희-옹정-건륭제라는 3대에 걸친 걸출한 황제 통치 기간에 몽고, 신장, 티벳을 점령, ‘팍스 시나카’를 형성했다.
그러나 말기에 들어 서양이 산업혁명을 걸쳐 제국주의 팽창을 시도하고, 일본이 명치유신을 거쳐 동아시아로 진출할 때 청조정은 국제정세를 몰랐으며, 청의 기둥이었던 팔기군은 부패하고 문란했다.
임 교수는 700 페이지 장문을 통해 누르하치에서 마지막 황제 부의까지 중국의 마지막 군주국이자 이민족 국가였던 청의 역사를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 중기 이후 한국 역사를 오버랩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주변 강대국이 안정돼 있을 때 평화를 구가하고, 주변 정세가 역동칠 때 예외없이 휩쓸렸다는 점이다.
그런데 세계사의 흐름이 크게 요동칠 때 한국의 지도층은 외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내부지향적인 사고와 권력다툼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청태종 홍타이지가 만주를 통일, 중원의 관문인 산해관을 공략할 정도로 강대해졌을 때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사대부들은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포기하고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군신의 예를 다했다.
병자년 두 번째 침략에서 청태종은 인조를 단하에 무릅꿇려 놓고 오줌을 갈기는 수모를 주었는데도 당시 조선의 권력을 장악했던 사대부들은 노론과 남인으로 갈리어 죽기살기로 싸우고 있었다.
또 말기에 청 나라가 와해되고 있는데도 왕실의 외척 민씨 세력들은 임오군란을 통해 대원군에게 밀려나자 청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그때 조선에 개입한 이홍장은 변법자강운동을 주동한 개인 군벌이 지나지 않았고, 그후 전개된 청일 전쟁은 일본과 중국의 개인 군벌간의 전쟁으로 끝났다는 게 임교수의 지적이다.
청이 멸한지 100년이 지나고, 지난 세기동안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크게 변했지만, 오늘날 한반도가 처한 실정은 ‘淸史’를 읽으면서 느낀 감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계적인 석학과 유력언론들은 9.11 테러가 21세기 세계사 변화에 단초를 제공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어느나라도 대적할수 없는 슈퍼파워로 등장했고, 지난해 사상 초유의 테러를 겪고는 ‘선과 악’을 재단하는 세계의 심판자로 등장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컬럼니스트 세바스챤 말러비가 포린어페어스지에 쓴 글에서 “미국은 싫지만 제국주의자가 되고 있다.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미 와있고, 미국은 힘에 의해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바야흐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성시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말 의회 연두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 한반도가 시끄럽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정부는 북한을 포용하는 햇볕정책이 군사력에 의한 대북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지름길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렇지만 야당이나 일부 언론들은 햇볕정책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느니, 대미 외교라인이 약하다느니 하면서 정부를 공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나라는 조선을 두 번이나 점령했지만, 직할 식민지로 삼지 않았다. 임 교수는 그 이유를 “조선은 대의명분과 자존심이 치열하기 때문에 정복은 할수 있지만 통치를 할수 없다는 사실을 청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이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정치세력과 지식인들은 조선시대 사대부처럼 내부 지향적인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우리 민족이 자주성을 살리면서 살아갈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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