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사회 낮과 밤]
▶ 연창흠 <편집국 부국장>
수어(手語)는 손으로 표현하는 언어이며 청각장애인의 언어이다.
청각장애인들 대부분은 손짓 언어인 수어를 고맙게 생각하면서 즐겨 사용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필요로 하듯이 청각장애인들은 수어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
수어는 청각장애인의 생활과 끊을 수 없는 불가분한 것이다. 하지만 수어는 청각장애인의 전유물은 아닌 듯하다. 손짓언어로 청각장애인 통역 봉사뿐만 아니라 찬양을 하는 한인들도 있기 때문.
특히 한인사회에서 처음으로 ‘수어 성극’이 무대에 올려진다. ‘증인들의 고백’으로 수어 성극을 준비하는 한인들의 연습현장을 찾아봤다.<편집자주>
2월 7일 저녁 8시 플러싱 소재 장애인들의 공동 생활터전인 밀알복지홈.
한인 10여 명이 손짓 언어로 인사를 나눈다. 그들은 수어를 하고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수어로 뭔가를 하고 있는 한인들이다.
직장인, 대학생 그리고 뇌성마비 장애인도 눈에 띈다. 대부분 장애인 전도, 봉사, 계몽의 사역을 맡고있는 뉴욕 밀알선교단 단원. 그리고 수어에 관심이 있는 한인들이다. 오늘은 여느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뮤지컬 ‘증인들의 고백’을 수어 성극으로 공연하기 위한 연습 첫날이기 때문. 뉴욕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인 수어 성극이라 각자의 각오도 남다르다.
수어 성극 태동의 첫날 모임. 우선, 수어 성극을 파악하기 위해 비디오를 통해 LA에서 공연된 ‘증인들의 고백’ 등 수어 성극을 모여서 본다. 수어 찬양 중심으로 각색을 짜고, 연습일정, 성우, 찬양팀 선정 등 수어 성극 공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기본 준비 아이디어 회의를 마친다.
4년 전부터 수어를 가르치고 있는 구혜란(26) 전도사. 그는 "수어 찬양 공연은 여러 번 해봤지만 수어로 뮤지컬을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다. 수어 성극은 동작이나 표정이 뚜렷해야하는 만큼 찬양보다는 힘들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열심히 해서 감동의 무대가 되도록 전력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2개월 정도 연습 후 4월께 무대에 올려질 손짓 언어 뮤지컬에 필요한 출연진은 30명 정도. 현재 수어를 배우고 있는 한인 10명과 뉴욕밀알수어찬양단 14명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수어 성극에 동참할 한인들을 외부에서 영입할 예정이다.
구전도사는 "수어를 전혀 모르는 한인들이 찬송 한 곡을 배우는데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10분이면 가능하기 때문에 수어를 모르는 한인들도 관심과 의욕이 있으면 수어 성극에 참여할 수 있다"며 "수어 성극은 수어 찬양과 독백으로 이뤄져 있어 부분적으로 연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연습에 참여한 한인 중에 73년 생 동갑내기인 김세화, 이향희 양은 둘 모두 뇌성마비 장애인. 이들은 지난해 수어 기초를 배웠다. 하지만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에 지난해 11월 19일부터 시작된 밀알 수어 기초 반에서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더욱 열심이다.
밀알복지홈 간사인 김양은 "청각장애인들과 대화를 못하면서 장애인 선교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지난해 수어를 배우게 됐다. 수어는 영어나 다른 언어를 처음 배우는 것처럼 쉽지 않다."고 전한다.
5년 전 뉴욕으로 유학 와서 올 졸업을 앞두고 있는 김양은 "수어 찬양이나 수어 성경구절 표현은 말씀의 내용을 더욱 음미할 수 있고 깊은 묵상에 빠지게 한다"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수어 성극이 복음전파는 물론 청각장애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한인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연습에 참여한 한인 가운데 5명은 지난 1월 수어 세미나에 다녀왔다. 이향희, 정임하(26), 이기원(23)양과 72년 생 동갑내기인 이정례, 곽영양 등이 주인공. 이들은 5박6일 동안 강도 높은 수어교육을 받고 왔다. 이들은 밀알단원뿐만 아니라 수어찬양으로 이미 한 두 차례 무대에 선 경험도 공통점.
지난해 5월 뉴욕에 온 이기원 밀알간사는 "처음에는 손에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매주 2번 2개월의 연습 후 지난해 11월 밀알의 밤 행사에서 ‘주만 바라 볼지라’와 ‘새벽이슬’ 등 두 곡을 수어로 찬양할 수 있었다. 귀로 듣고 표현할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행복함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열심히 하자’가 이번 수어 성극을 준비하는 나의 각오"라며 잠깐 인터뷰에 응한 뒤 수어 성극을 위한 손짓 언어 연습에 몰두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경 무대에 오를 수어 성극의 장소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플러싱 타운홀, 플러싱 고등학교 강당, 롱아일랜드 아름다운 교회 등이 유력한 장소. 하지만 1-2회 공연이 아닌 몇 개 지역을 순회하며 여러 차례 공연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예상 경비는 1만 달러 정도로 단체나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매년 연례적으로 한 차례씩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연합하여 수어찬양 등을 공연하는 밀알의 밤 행사를 준비해온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뉴욕밀알선교단 최병인 단장의 기대다.
최단장은 "뉴욕에서 수어로 성극이 준비되기는 처음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참 의미를 담고있는 뮤지컬 ‘증인들의 고백’이 수어 뮤지컬로 무대에 오르면 새로운 문화로서 신선한 충격을 주게될 것이다"고 말한다.
그는 또 "수어 성극에는 청각장애인들도 직접 참여하여 그들의 행사로 꾸며지게 된다."며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과 한인들에게 진지한 삶의 가치를 심어줌과 더불어 건강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나눔문화의 장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수어 뮤지컬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름다운 손짓, 아름다운 언어인 수어로 진행되는 성극 연습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30분, 화요일 저녁 9시 밀알복지홈(142-44 Bayside Ave. Flushing, NY 11354. 718-445-4442)에서 실시된다"며 "관심이 있거나 동참하고 싶은 한인들 모두에게 문호는 개방되어 있다"고 전한다.
120분 동안 잠시도 쉴 틈 없이 수어 성극의 성공을 위해 한마음으로 하나된 그들. 소리 없이 고요와 정막 속에 사는 청각장애인에게 마음의 소리를 전달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는 ‘손짓사랑’이 흠뻑 묻어있었다.
▲수화(手話) 대신 수어(手語)로 불러주세요
첫째, 농아인이 사용하는 모어(母語)인 손짓 언어는 엄연히 언어이기 때문에 수화가 아닌 수어라는 어휘가 타당하다고 판단되기 때문.
손짓 언어를 영어로 sign language라고 되어 있어 언어의 일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농아인들이 사용하는 손짓 언어가 엄연한 언어라면 수어(手語)라는 말을 써야 옳을 것이다.
둘째,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다른 고유한 문법 체계 및 표현 양식을 지니고 있어 한국어 식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통사론적, 구문론적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문장식으로 표현하는 수화(Signing Exact Korean or Manually Coded Kroean)와 농아인들이 구사하는 수어(Korean Sign Language)와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그 중 중요한 차이를 꼽는다면 문장식 수화는 딱딱한 느낌이 드는 반면 수어는 부드럽고 현란하다는 것과 문장식 수화 표현은 한계성을 느끼지만 수어는 표현이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한문으로 볼 때 수화라는 말은 손짓 언어와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수화라는 한문을 보면 손 수(手)와 이야기 화(話)로 되어 있는데 그 중 話라는 한문을 보면 말言과 혀(舌)로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결국 ‘話’라는 한문은 혀로 말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손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수어의 독특한 표현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농아인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수어라는 어휘가 낫기 때문이다.
수어에서 ‘어(語)’라는 한문을 보면 말言과 나吾로 결합되어 있다. 한국어와 구별되는 고유하고 아름다원 언어인 수어는 농아인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수어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는 이해할 만하나 그다지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는 해마다 수많은 신조어를 만난다. 시대의 필요가 이런 신조어들을 낳는 것이다. 만일 독자 중에 수어가 엄연한 언어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화라는 단어를 고수해도 상관없다.
만일 수어가 언어임을 인정하는 독자라면 앞으로 수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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