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는가 오지 말아야 할 것이 왔는가. 한국축구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의 거취를 놓고 한국내 여론이 뜨겁다. 월드컵이 코앞에 닥친 마당에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그의 손에서 지휘봉을 빼앗아야 한다는 주장과 때가 때인 만큼 좀더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맞물려 재탕삼탕 갑론을박이다. 실력과 상관없이 축구가 국기로 자리잡은 한국에서, 더욱이 월드컵을 개최하게 돼 그 열기가 어느때보다 드높은 마당에 태극전사들을 이끈다는 게 얼마나 고된 형극의 길인 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동이다. 한국축구 사령탑의 부침사는 이를 생생하게 대변한다.
아주 먼 옛날로 되돌아갈 필요도 없다. 한국이 디펜딩 챔피언 독일과 또다른 유럽강호 스페인을 상대로 눈부신 선전(각각 2대3 패배, 2대2 무승부)을 거듭해 세계축구계를 두번 놀라게 한 94년 여름, 한국의 김호 감독은 김포공항에서 열린 대대적인 환영행사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한국땅에 발을 딛기도 전 그는 이미 퇴출된 상태였다. 월드컵 첫승 제물로 꼽은 남미대표 볼리비아와의 경기를 속터지는 무승부로 마감했다고 해도, 또 그의 월드컵까지로 돼 있었다고 해도, 지구촌 축구계가 입을 모아 칭찬하고 게다가 야박한(?) 팬들조차 "그만하면 잘했다"고 인정하는 터-사실 여론이 나빴다면 환영식은 불가능했다-에 대한축구협회 집행부는 서둘러 그를 내쳤다.
김호 감독의 뒤를 이은 지휘자는 아나톨리 비쇼베츠. 우크라이나 태생 러시아인으로 70년 멕시코월드컵때 맹활약한 그는 88년 서울올림픽때 소련에 첫 올림픽 우승컵을 안기며 지도자 역량까지 공인받아 한국대표팀의 1호 외국인감독(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겨냥해 독일인을 총감독으로 앉혔으나 김삼락 감독과의 불화로 중도하차)으로 초빙된 것이었다. 비슷한 발음으로 붙여진 그의 한국식 애칭은 배추. 96년 봄 애틀랜타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한국이 ‘어느새 초강적으로 커버린’ 일본-당시 마에조노·나카타가 이끄는 일본팀은 우승후보 0순위였다-을 2대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자 배추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배추를 귀화시키자"는 못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인기절정 배추의 푸르름은 한계절도 더 버티지 못했다. 그해 여름 애틀랜타 올림픽 1승1무1패. 처음 맛본 1승의 감격은 사라지고 배추는 8강실패의 죄값을 치러야 했다. 서울 한남동에 임시 거처를 둔 그는 여론뭇매가 두려워 손수 짐을 챙길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애틀랜타에서 막바로 러시아로 ‘피신’해야 했다. (그는 요즘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해 여름의 앙금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한국팀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비쇼베츠 후임자는 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 4강신화의 지휘자 박종환 감독. 그는 더 비참했다. 96년말 아시아선수권에서 자력8강 진출조차 실패하고 준준결승에서 이란에 2대6으로 참패한 한국선수단이 열받은 팬들의 눈길을 피해 새벽같은 이른아침에 귀국하는 마당에 박감독이 ‘1년 반쯤 남은 임기’를 들먹일 형편은 못됐다.
2002년 월드컵 개최권을 쥔 한국이 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예선조차 어려우리란 불길한 예감들이 지배하던 97년 1월초, 왕년의 수퍼스타 차범근이 소방수 감독으로 취임한다. 차감독은 고졸생 프로신참 고종수를 발탁하는 등 대폭 물갈이를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프랑스월드컵 진출티켓을 확보한다. ‘차범근 X파일’로 불린 그의 컴퓨터 일지는 과학적 관리법의 표상으로 수차례 언론지상을 장식했고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당시 분위기에 편승해 "차범근을 대통령으로"란 구호들이 심심찮게 경기장 안팎과 사이버 토론장을 뒤덮었다.
그러나 한국대표팀 감독에게 운명지워진 듯한 비참한 최후는 천하의 차범근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이 멕시코에 1대3으로 역전패를 당하고 지금의 한국감독 히딩크가 이끄는 네덜란드에 0대5로 참패하는 순간 차범근은 ‘어제의 영웅’에서 ‘오늘의 역적’으로 전락, 벨기에와의 최종전을 지휘하지도 못한 채 대회도중 홀로 귀국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태극호 새 선장은 허정무. 전임자들의 연쇄몰락을 지켜본 그는 내심 2002월드컵을 염두에 뒀으나 ‘씨앗이 말라버린 감독마켓’에 비춰 총대를 매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해 12월 아시안게임에서 태국전 패배 등 졸전으로 곧 위기를 맞은 그는 언제까지 감독만 족칠 것이냐는 여론이 꿈틀거린 덕에 그는 불명예 퇴진 위기를 2000시드니올림픽에서 2승1패의 호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두달뒤 아시아선수권(2000년12월) 부진(어렵사리 4강진출)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던 허정무카드는 끝내 폐기처분됐다.
현 감독 히딩크가 삼고초려끝에 한국팀 지휘봉을 잡은 것은 지난해 1월. 처음 몇개월동안 성적이 나지 않아 고전했던 그는 프랑스월드컵 3위 크로아티아와의 2차례 평가전에서 1승1무를 거두는 등 한국팀이 지난해 가을부터 잇달아 알찬 경기력을 선보이자 "역시"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골드컵 졸전으로 집중타를 맞고 있다. "월드컵으로 가는 과정인 만큼 좀더 지켜봐달라"는 그의 항변은 "볼 것 다 봤다, 안봐도 뻔하다"는 식의 비난에 묻혀버리고 "대회장에 (부인도 아닌) 애인을 동행한다는 건 그가 한국인을 물로 본다"는 증거라는 등 관심법을 동원한 인신매도까지 넘실대고 있다.
과연 그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어떻게 하는 게 진정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한 길인가. 또 하나, 비판자들이 즐겨 말하는 ‘한국식 축구’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것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는 성과는 무엇인가. 선진축구를 지향해야 한다면서도 틈만 나면 정체불명 실적불명 한국식 축구 타령을 늘어놓는 저의는 또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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