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영의 인물산책]
▶ 미은행연구소 아시아담당 위원장 이성수씨
정초인 지난 10일 뉴욕지역의 아시아인들이 아시아계의 정치력과 권익신장을 목적으로 한 아시안 아메리칸 연합회를 결성했다.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쉬, 필리핀, 베트남 등 8개국의 인사들이 모인 이 모임을 주도한 사람은 한인인 이성수씨(59.미국명 프레드 리).
이씨는 아시아 각국의 공관과 단체를 통해 아시아계 지도자들을 모아 이 모임을 결성했고 첫 모임에서 만장일치로 초대 회장에 추대됐다.
이회장의 본업은 금융인이다. 한국에서 은행원으로 출발하여 미국에 온 후에는 외국은행의 지점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미국은행연구소의 아시아담당 위원장으로 아시아 각국의 금융인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같이 오랜 금융계 생활을 통해 아시아와 미국 각계에 폭넓은 교분을 쌓았다.
특히 그는 미국의 정계인사들과 교류가 많다. 이런 교류 덕분에 롱아일랜드의 나소와 서폭 카운티에 한인자문위원회를 만들었고 현재 나소카운티의 인권위원장에 임명되어 인준을 기다리고 있다. 그 뿐 아니라 한미문화교류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씨는 부산대 경영대학원을 나온 후 조흥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1976년 유학 도미했다. 도미후 조흥은행 뉴욕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바룩대학을 졸업했고 그 후 영국계 은행인 내셔날 웨스트민스터 은행에 들어갔다.
이 은행에서 1985년 플러싱지점장을 시작으로 엘머스트 지점장, 퀸즈와 롱아일랜드 일부지역을 포함한 지역본부장을 지내면서 92년까지 일했다.
당시만 해도 한인들은 비즈니스 규모가 매우 영세했고 신용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 융자를 받기 어려운 상태였는데 이씨의 도움으로 융자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또 수입업을 하는 한인들은 은행을 통해 신용장을 개설하는데 이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뉴욕 뿐 아니라 멀리 뉴저지와 커네티컷에서도 한인들이 이씨를 찾았다.
92년 내셔날 웨스트민스터은행을 떠난 후에는 뉴욕신용기관의 아시아담당 책임자로 신용조회 평가, 컨설팅, 교육등을 맡아 일했고 1994년부터 미국금융연구소의 아시아연구위원장으로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미국금융연구소는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재정을 부담하는 기관으로 이씨는 이 연구소에서 아시아 각국의 금융기관에 대한 교육, 연락, 자문등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이씨는 아시아 각국의 외교관들과 접촉이 잦고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가 미국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정치인들과 교분을 갖게 된 데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내셔날 웨스트민스터은행 시절 그는 퀸즈 적십자의 보드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뉴욕 보이스 신문에서 기고 요청을 받았다. 당시 한흑간의 분규가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던 때라 신문사측은 한흑문제에 대한 의견을 요청, 뉴욕보이스는 이씨의 기고문을 1면에 싣고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설까지 실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이씨의 기고는 아무 문제가 될 내용이 아니었다. 한흑 분규는 다인종사회에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 사건이므로 서로 대립하여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함으로써 협력을 증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우 합리적이고 온건한 제안이었다.
그런데도 이 기고가 신문에 실리자 흑인 과격주의자들과 흑인계 주간지 암스텔담지가 이씨를 타겟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흑인과격주의자들은 한흑분규를 흑인운동으로 밀고 나가기 위해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당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이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던 시기였는데 흑인과격주의자들은 백인 영국계 은행인 내셔날 웨스트민스터은행이 이씨를 앞세워 흑인을 비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은행의 뉴욕지역 지점 앞에서는 이씨를 파면하라는 흑인들의 데모가 연일 이어졌다. 6개월간 이런 소란을 겪은 끝에 92년 은행의 구조조정에서 이씨는 첫번째 해고 대상에 올라 은행을 떠났다고 한다.
이때 이씨는 정치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정치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특히 공화당과 깊은 인연을 맺어 많은 정치인들과 교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흑인들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많은 흑인지도자들도 알게 되었는데 이 인연으로 후에 이들을 한인사회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씨는 인종과 민족간의 이해를 증진하는데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한국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데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는 퀸즈와 롱아일랜드지역의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였고 퀸즈 뮤지엄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한인작가들의 전시회를 주선하는 등 예술활동을 도왔다. 그리고 아시아계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예술재단을 설립하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한인들이 개인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자질과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응결체로 단합할 때 응집력이 약하고 잡음이 많은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인에 비해 봉사의 정신이 부족한 점도 지적했다.
90년대에 퀸즈 적십자의 부위원장을 지낸 이씨는 특히 봉사정신을 강조한다. 그는 한인들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주류사회에 들어가는 길은 봉사활동이라고 했다.
봉사활동은 어떤 기반이나 재력이 없어도 가능하며 아이디어와 몸으로 떼워 미국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봉사활동을 통해 한인사회와 주류사회를 연결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주류사회의 미국인이 되는 비결이 바로 이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그의 말은 한인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말인 것 같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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