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떡볶이 먹고 수다를 떨어야만 친구는 아닐 것이다. 같은 취미와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민화라는 공통된 관심을 갖고 있는 에리카 남(46·주부)씨는 막내동생뻘 되는 앤지 김(30·미술개인지도)씨를 친구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매주 민화 교실에서 만나 함께 겨레 그림을 그리고 차도 나누다 보니 10년이 넘는 나이 차를 뛰어 넘어 친구가 된 것은 물론, 이제는 또래들보다 훨씬 마음이 잘 맞는다. 햇살 찬란한 주말 오후 이 두 화우는 그리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예술에의 열정을 가슴을 안고 세계적 예술작품의 보고인 게티센터를 찾았다.
언덕 위 전시관으로 향하기 위해 트램에 몸을 실으며 오늘 게티 센터에서 접할 그 풍부한 문화적 체험에 대한 마음 준비를 한다. 발아래 펼쳐지는 세펄베다 패스와 LA의 시내 경관이 시원스럽다. 말리부에서 브렌트우드 새 건물로 옮겨온 지 5년째를 맞지만 110에이커 대지에 들어선 전시관 건물의 위용은 여전하다. 그간 전 세계에서부터 600만이 넘는 관람객들이 게티센터를 찾았다고 한다.
인류 문화의 보고가 장르와 시대별로 전시돼 있는 동서남북, 네 개의 전시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대리석 조각들을 먼저 볼까,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먼저 볼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된다. 동전을 던지기 직전, 피에르 보나르의 와인 향기 가득한 무랑루즈 언덕 그림이 있는 서관에서부터 오늘의 방문을 시작하기로 합의를 봤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는 취할 듯 진한 향기가 전해질 것 같고 동료 인상파 화가들도 한 점쯤은 갖고 싶어했던 폴 세잔느의 정물화의 사과는 백설공주가 독이 있는 줄도 모르고 먹었을 만큼 유혹적이다. 끌로드 모네의 일출, 피에르 오귀스뜨 르느와르의 프로머나드 등 값을 메길 수 없는 명작들을 앞에 대하자니 가슴은 말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가득 차 오른다.
1600년도 이전 예술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북관. 탄탄한 근육의 헤라클레스 조각을 앞에 대하며 신과 인간 어느 세계에도 속할 수 없었던 그의 고뇌를 헤아려 본다. 포도송이를 머리에 얹은 주신, 박카스 조각을 보자니 와인 향기가 맡아지는 것 같다. 탐스러운 가슴의 비너스. 조각가의 온 존재를 휘저어놓았던 그녀의 관능은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를 보며 영적 경건함에 젖었다가는 바로크 시대 여인들의 풍만한 누드를 실컷 눈에 들여놓으며 육체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기도 했다.
1800년대 프랑스 귀족의 방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남관에 들어서 그 화려한 가구며 생활 소품들을 보자니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고 살면서도 가슴 한 구석은 늘 시렸던 불운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의 고독이 느껴지는 것 같다.
현재 게티센터에서는 이탈리아를 주제로 한 3개의 특별 전시가 마련되고 있다. 1700년대, 유럽에서는 수사학, 윤리학, 고전 등의 공부를 마친 귀족의 자제들이 이탈리아로 수학여행을 떠나 자신이 배운 것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문화와 예술이 물처럼 흐르는 나라, 이탈리아를 본 그들의 가슴은 얼마나 감격으로 전율했을까. 2000년대에도 예술 테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탈리아를 빼놓을 수 없는 일. 알차게 꾸며진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 전시는 비행기 삯을 치르지 않고도 이탈리아로 떠나는 문화여행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다. 나폴리와 베수비오 전시는 3월24일까지, 로마 전시는 8월11일까지, 그리고 그랜드 투어 시기의 회화 전시는 5월12일까지 계속된다.
그랜드 투어 전시를 돕기 위한 강의, 그리고 이 전시와 같은 주제의 콘서트도 세 차례 있을 예정인데, 특히 3월 2일에 있게될 무지카 안젤리카 (Musica Angelica)의 공연은 18세기 귀족들의 살롱에서 있었던 문화적 모임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은 감흥을 줄 것이다.
로버트 어윈이 디자인한 중앙 정원(Central Garden)은 열린 공간에 마련된 또 다른 예술작품. 빨강, 노랑, 보라, 분홍, 오색의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조화롭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며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항상 자신의 손으로 정원을 꾸몄던 끌로드 모네, 그가 2000년대 LA에 살았다면 이런 정원을 꾸몄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달콤한 꽃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여놓는다.
동그란 동선을 여러 겹 만들어 놓아 한바퀴 돌고 나니 그것도 산책이라고 몸이 더워 온다.
LA에 일몰이 아름다운 장소가 여럿 되지만 게티센터의 언덕 위 만한 곳도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 예술 작품들을 감상한 뒤 순백으로 정화된 마음의 캔버스에 인상파 화가들이 그토록 천착했던 노을의 붉은 빛이 내려앉은 풍경화는 한동안 두 화우의 가슴을 풍요롭게 해줄 것 같다.
▲가는 길은 10번 W → 405 N. → Getty Center Dr. 출구에서 내려 우회전해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나온다. 주소: 1200 Getty Center Dr. Los Angeles, CA90049 ▲토, 일요일과 주중 오후 4시에는 주차 예약이 필요 없고 차를 가져오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주차 예약 (310)440-7300, 웹사이트, www.getty.edu. ▲여는 시간: 화, 수, 목, 일요일은 오전 10시-오후 6시. 금, 토요일은 오전 10시-오후 9시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과 주요 공휴일은 휴무한다. ▲입장료는 별도로 없고 차 한 대당 주차비는 5달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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