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권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부정 비리사건이 터졌다 하면 청와대 고위직들의 얼굴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이 사태를 어쩔 것인가. 높은 자리에 있는 동안 한탕하자는 저 더러운 비리 공직자들이여, 그대들은 불쌍한 민초들이 생활고에 허덕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국민들 가슴은 지금 울분과 통탄으로 끓어오르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건설 현장에서 하루품팔이를 하는 실직자, 자녀의 사(私)교육비를 대기 위해 행상에 나선 주부, 하루 세끼를 잇기도 힘든 수많은 극빈자들. 이제 그들은 권력과 지위를 함께 움켜쥐고도 모자라 부(富)까지 소유하려는 집권 실세들의 파렴치한 행각에 치를 떨고 있다.
이름도 없던 벤처기업이 던진 현찰, 주식, 향연, 취직의 달콤한 베이트(먹이)를 덥석 무는 저질의 식탐을 과시하면서 저들의 더러운 파렴치 행각은 절정을 이루어왔던 것이다. 무명의 벤처 주인, 그것도 살인범이라는 범죄자가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수석비서관들을 면대하고 그들의 주선으로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 참석하고, 장관, 국회의원을 내키는 대로 만날 수 있었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란 말인가.
이른바 ‘4대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청와대 고위직과 권력 실세들의 연루혐의가 제기되고 있음은 "권력의 핵심이 썩었다"는 야당 주장이 공연한 트집만은 아니라는 심증을 준다. 요 근래 벤처와 청와대 관계자들의 검은 거래 혐의에 대한 보도 내용을 보면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하고 놀랄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권력의 핵심부서인 청와대가 이번처럼 비리에 연루된 예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사건부터 살펴보자. 현재 검찰이 수사중인 윤태식 게이트. 수지 킴이라는 여인을 홍콩에서 살해했음이 들통난 윤태식의 ‘패스 21’ 벤처사는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비서관들의 지원 아래 사업을 확장해 나왔다. 바로 이 살인범의 뒤를 봐준 혐의로 청와대 고위관리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대통령의 ‘입’으로 통하는 박준영 공보수석과 김정길 정무수석(당시)이 문제의 윤태식을 자주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경호실의 경호관으로 있던 이성철이란 사람은 윤으로부터 돈을 받은 게 드러나 구속 중이다.
DJ정권의 실세로 행세한 박지원 공보수석(당시)은 99년 초 말썽 난 한빛은행 부정대출 사건(한빛 게이트)으로 검찰 조사와 국회 청문회 조사를 받았다. 공보 수석실 3급 행정관이었던 박현룡이란 이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 등 사정기관을 지휘하던 신광옥 전 민정수석은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현재 구속 중이다. 20대의 젊은 벤처인인 진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으나 검찰은 1천만원대로 줄여 기소했다.
이밖에 옷 로비 사건, 이용호 게이트, 정준현 게이트,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사건 등 부정사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청와대 고위직들이 다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석상에서 "앞으로 벤처 비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부정사건의 재발을 막으라는 대통령 말은 옳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측근들의 게이트 연루 혐의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왜 추상같은 단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김 대통령은 또 항간에 파다하게 퍼진 두 아들들의 비리 사건 "개입설"에 대해서도 완곡한 말로 부인했다. 이에 야당은 "검찰이나 특별검사를 향해 아들 비리 사건은 손대지 말라는 사인을 보낸 것"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이미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김홍일 의원에 대해서 특별 검사가 출국 금지를 시키지 않은 것도 문제삼았다. 하지만 김 의원 문제에 관한 한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외면한 흔적이 있다. 출국 당시만 해도 이렇다할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 갔던 것이다.
이제 불통은 청와대 핵심부로 튀었다. 야당은 윤태식 게이트에 대해서도 특별검사제 도입을 공언하고 나섰다. 박준영씨 뒤에 또 다른 실세가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들은 지금 김대통령을 주목하고 있다. 검찰에 엄정 수사를 지시하는 것 이상의 단호한 단죄 의지를 실천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축소나 은폐의 기미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바로 올 12월에 있을 대선과 DJ 통치에 대한 심판이 국민들 몫이다.
김 대통령은 이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대책 없이 시간을 보냈다가는 국민적 불신과 분노만 증폭시키리라는 점을 깊이 유념해야한다. "민심이 천심"이라던 자신의 말을 실천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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