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언제나 만년 소년 같았던 최수종이 어느덧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 최수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를 닦고, 가정을 잘 다스려야 나라를 통치하고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글귀가 가슴에 와 닿았다.
연기자로서 자신을 다잡아왔고, 아내 하희라 아들 민서 딸 윤서와 함께 가정을 오손도손 꾸려 나가는 그가 KBS 1TV <태조 왕건>을 통해 천하를 호령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수종과의 만남은 지난해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3일 이뤄졌다. 서울 잠원동 그의 집 앞 포장마차로 가자고 해 따라갔더니 웬 걸. 남희석과 첫번째 취중토크를 했던 실내 포장마차 ‘찬스’ 였다.
’태조 왕건’으로 KBS 연기대상 ‘감격의 눈물 펑펑~’
“왜 상 받으면 늘 울어요? 선배가 그거 꼭 여쭤 보라는 데요” 포장마차를 향해 가며 던진 첫 질문이었다. 99년 <야망의 전설>로 KBS 연기대상을 받을 때도 펑펑 울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저렇게 우나’싶을정도로 말이다.
순간 쑥스러워 하는 표정. 그는 “상을 받는 순간 그 동안 고생했던 것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져요. 두꺼운 갑옷을 입고 말에서 떨어질 뻔한 순간, 더위에 고생하다 결국 병원에 실려갔던 일, 또 <태조 왕건>이 처음 방송됐을 때 최수종을 왜 캐스팅 했는 지 모르겠다는 말들…”이라며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다들 말하더군요. 김영철 선배에 가린 것 아니냐고. 이환경 작가께서 ‘왕건은 떄를 기다릴 줄 아는 인물이다. 왕건 처럼 참고 기다려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나중에 승리하는 건 결국 왕건이었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최수종도 기자도, 안주는 별로 먹지 못한채 술만 계속 마셔 금방 불콰해졌다. 안주는 오돌뼈와 곰장어, 계란말이.
어느덧 마흔줄 "이제야 연기가 보인다"
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해 한동안 트렌디 드라마의 스타로 군림했다. “한 8년 동안 애들 드라마만 했죠. <질투>에 <파일럿>까지.” <야망의 전설> 때부터 청춘스타가 아닌 연기자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기자의 말에 답했다.
이제 중견 연기자가 돼서 그런가. 그 역시 세대 차이를 퍽이나 느끼고 있었다. “옛날엔 배우들이 차가 있어도 꼭 모여서 버스타고 촬영장에 갔거든요. 스태프들과 동료들과 웃고 떠들고, 그러면서 친해졌는데 요즘은 같이 출연해도 말 한번 못해볼 때가 있어요.”
가장 아쉬운 것은 후배들이 배우려 들지를 않는다는 것. “뭐든 배워야 해요. <조선왕조 오백년>을 할 때, 그 떄만 해도 스타라고 우쭐대는 면이 있었거든요. 한 선배가 난데없이 ‘잘해’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뭘요?’ 그랬죠. 그랬더니 ‘뭐긴. 연기를 잘 해야지’ 그러시대요. 그 후부터 녹음기 들고 선배들 쫓아다니며 대사 한번 읽어달라고 했어요. 이번에 <태조 왕건> 할 때도 대본 들고 김흥기 선배한테 제일 먼저 달려갔죠.”
식구들과 오손도손…작은 파티 자주 열죠
드디어 기자의 얼굴이 다 나왔다. 늘 뒷모습과 옆모습만 나왔는데…. 최수종은 "술자리에서 사진찍는 건 정말 어샊하다"면서도 여러가지 포즈를 취했다. 하물며 기자는 얼마나 어색했겠는가.
그의 가정으로 화제를 옮겼다. 차인표가 “수종형네 집엔 안 놀러 가겠다”고 할 만큼 식구들에게 유난히 애정을 보이는 최수종이다.
그런데 세상에. 천하의 최수종이 딸 윤서의 주민등록번호가 4로 시작하는 걸 모르고 있었다. 2000년 이후 출생한 아이는 아들은 3, 딸은 4로 시작한다. 윤서와 같은 해에 태어난 둘째 아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있던 기자의 압승.
“<태조 왕건>을 찍으면서 둘째 윤서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애가 저한테 안 오더라구요. 그도 그럴 것이 1주일에 4일을 문경 등 야외촬영 하느라 집을 비웠거든요. 그래서 선배들한테 욕 먹어가며 촬영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직행했어요. 요즘은 아빠를 알게 돼 예전처럼 촬영 끝나고 술 한잔 할 수가 있습니다.”
최수종 집은 작은 파티가 자주 열린다. 망년회, 신년회, 가족들 생일, 심지어 결혼기념일까지 지인들 20명 정도를 불러놓고 파티를 연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중3때까지 입니다. 식구들과 뿔뿔이 흩어졌던 기억 때문인지 사람들과 함께 모이는 게 좋아요. 같이 밥 해먹고, 설거지 하고, 이런 게 사람 사는 정이니까요.”
일간스포츠 월드컵 객원기자인 최수종에게 월드컵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이틀은 이야기할 만큼 정말 할 말이 많아요. 하지만 싫은 소리가 많을 것 같아 그만두죠”라며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나 월드컵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꽤 술을 마셨다. 술 마시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많이 나누었다. 기자 보다 나이 많은 연기자에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참 반듯하게 길을 닦아온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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