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북경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일행은 일급은 아니지만 일급에 가까운 호텔에 여정을 풀었다.
하루 일정을 마친후 나는 간단한 음료를 마실수 있는 호텔 커피샵을 찾았다. 커피샵은 로비 한쪽에 있었다. 밤이라 많은 사람들이 커피샵에 모여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커피샵은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칵테일 바도 겸하고 있었다.
중국에서의 호텔은 돈이 많은 고급 손님들이 찾는 곳이다. 감히 서민들은 엄두도 못내는 곳이라고 그 쪽 안내인은 귀띰해 주었다.
커피샵에 모여 있는 중국 사람들을 보니 모두 잘 차려입은 남녀들이었다. 보기에도 돈깨나 있어 보이는 그런 차림들이었다. 여자들도 드레스를 입은 미인들이었다.
저녁 9시쯤 되었다. 까만 원피스를 곱게 입은 어여쁜 중국 아가씨가 카운터 앞에 나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중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며 바이올린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바이올린 한 곡이 끝났다. 나는 두 손에 힘을 주어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북경에서 듣는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도 감미로운 탓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십명이 있는 그 자리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정말 난감한 상황에 나는 봉착했다.
그래도 치던 박수를 그치지는 않았다. 많은 중국 남녀가 "웬 미친놈이 다 있나!"하는 식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당황해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아가씨도 무안했던지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는 듯 했다. 그리고는 다시 다른 곡을 준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모아졌던 시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웅성웅성 말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두 번째 곡의 바이올린 연주가 끝난 후 나는 다시 힘차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첫 번 째 보다 더 큰 박수였다. 이번에도 똑같이 주위의 중국 남녀들은 나를 쳐다보며 첫 번째 보다 더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쏘아댔다. 바이올린 연주하는 아가씨가 나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가씨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 안에는 감사하다는 의미가 숨겨있는 듯 했다.
세 번, 네 번, 바이올린 연주가 끝날 때 마다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5번 째 연주가 끝난 후 몇 사람의 중국 남녀가 나의 박수소리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아하, 기 죽지 않고 박수 친 보람이 이제 나타나는구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럼 그렇지, 당신들도 사람인데 아름다운 바이올린 생음악을 듣고 박수를 치지 않다니, 해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던 오기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아가씨의 바이올린 연주는 약 1시간 가량 계속됐다. 나는 그 아가씨의 연주가 끝날 때 마다 더 크게 박수를 쳐주었고 주위의 호응도 더 좋아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아가씨는 호텔에 나와 손님들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고 돈을 받는 아르바이트 여자대학생이었다. 처음 당황했던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당당히 나는 그 커피샵의 히로어가 돼버렸다.
바이올린 연주가 다 끝나 그 아가씨를 나는 불렀다. 그리고 제일 비싼 커피를 한 잔 선물했다. 그 아가씨는 영어를 잘 못했다. 그러나 1시간 내내 연주가 끝날 때 마다 쳐 준 박수 소리에 감사하다는 활짝 밝은 미소로 나의 커피 선물을 대신해 주었다. 주위에 있던 중국신사들이 부러운 듯 나를 쳐다보며 그들도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하루 일정을 마친 우리 일행을 나는 모두 커피샵으로 안내했다. 커피샵에서 생음악이 연주된다고 하니 모두들 따라나섰다. 전 날 연주했던 아가씨는 아니지만 이날도 다른 중국여자대학생이 나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첫 곡이 끝나자 마자 우리 일행 여덟명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두 박수를 쳤다. 곡이 끝날 때 마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커피샵을 울렸다. 전 날 나 혼자 치던 박수 소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사전 아무 약속도 없었다. 중국 아가씨는 박수를 받으며 활짝 웃는 얼굴로 바이올린을 더 열심히 연주해 주었다. 우리가 그 호텔을 떠난 후 또 어떤 사람이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박수를 쳤는지는 모른다.
문화의 차이란 이렇게 틀리다. 박수는 감사와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다. 새 해가 시작됐다. 올 해에는 우리 모두 서로, 박수를 쳐주는 한 해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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