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새해가 밝았다. 정초에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희망찬 한 해를 설계하는 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의 관행이다. 그러나 올해는 어쩐지 떠오른 해가 밝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 사상 최악의 테러를 경험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데다 앞으로 어떤 돌발 사태가 벌어질지 불안하고 갑자기 직장을 잃은 수많은 어두운 얼굴을 주위에서 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일년은 유쾌한 한 해가 아니었다. 9·11 테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 침체로 수백만이 일자리를 잃은 미국, 유혈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아랍권, IMF 사태 때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한국, 장기 불황에 신음하고 있는 일본, 동시 불황에 빠져든 유럽 등 지구촌 어디를 둘러 봐도 밝은 모습은 찾기 힘들다.
새해가 됐지만 테러와의 전쟁도 그렇고 경기도 그렇고 낙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일단 성공을 거뒀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부시 대통령 자신도 올해는 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올해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지만 경기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렵다. 지난 해 초만 해도 미국이 불황에 빠지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앞으로 일년을 반드시 비관할 필요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숨은 힘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미 국민들은 테러에 겁먹고 우왕좌왕 하기보다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어느 때보다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물질적 풍요에 도취돼 있던 미국인들은 희생과 봉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으며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미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미주 한인 사회의 모습도 달라졌다. 그전까지 ‘남의 나라 땅에서 잠시 머무는 손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한인들이 이제는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이곳이 내 나라’는 의식을 지니게 된 것이다. LA 적십자사가 모은 테러 성금의 1/4이 한인 사회에서 나올 정도로 미 주류 사회와 아픔을 함께 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인들의 눈에 한인들 이미지가 그 만큼 높아진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믿음, 사랑과 함께 소망을 가장 큰 덕목으로 친다. 그리스 신화에도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상자를 열어 온갖 잡귀와 불행의 씨앗을 날려보낸 후 절망하고 있는 판도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희망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느냐보다 그 처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자신의 불운을 주위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자포자기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남들이 견디기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대업을 이룩하는 것을 자주 본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 치고 비관론자는 없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없는 사람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는 20세기 들어서 만도 제1차 대전과 2차 대전, 대공황과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 등 숱한 고난을 겪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수많은 좌절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전진의 역사였다. 21세기의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며 건강하며 긴 삶을 누리고 있다. 테러와 불황은 당장은 큰 뉴스가 같지만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큰 강의 수면 위에 일었다 지는 잔물결에 불과하다.
예부터 동양에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서양에는 ‘인간이 시도하고 하늘이 결정한다’(Man proposes, Heaven disposes.)는 말이 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자신이 의도한 일이 뜻대로 이뤄질지 아는 것은 인간의 힘 밖에 있는 일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테러와 불황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말의 해’인 임오년 밝게 떠오른 새 해와 함께 대지를 뛰노는 말처럼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