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국에서 어떤 청년이 유력 일간신문에 한 여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해 줄 것을 요구하는 대형광고를 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전 이곳 LA 인근의 조그만 백인 동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출근길 프리웨이 육교에 “신디, 한번만 용서해 줘! 사랑한다. (Cindy, Give me one more chance! I love you.)”라고 쓴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이 현수막은 신디는 물론, 나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이다. 현수막의 주인공 신디가 위의 한국 청년처럼 연인 사이인지, 그 남성이 결혼해서 자녀를 두엇쯤 둔 중년의 남성인지, 아니면 성공적으로 자녀들을 잘 키워 내보내고 말년에 내외가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다가 남편이 뭔가 아내를 섭섭하게 하여 아내가 많이 화가 난 것인지… 현수막의 내용만 가지고는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짐작은 가능하다.
어떤 경우이든 참 재미있는 발상이며 남자답고 멋있는 사과임은 확실하다. 신디는 분명히 그 남성을 용서해주었을 것이고, 그 사람의 공개 사과를 용기있는 결단이라며 높이 평가해 받아들이고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2001년의 한해도 저물어 가는 12월, 사랑과 용서의 계절에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지나간 한해 동안 어느 누구에도 사과할 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이웃에게, 친구에게, 사업상 만난 사람 또는 직장동료에게…,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소중한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서운하게 했던 일이 있었다면 이 해가 가기 전에 신디의 남자처럼 솔직하고 멋지게 화해와 용서를 구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원래 멋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옷차림새, 행동, 됨됨이 등이 세련된 상태나 아름다움’이라는 뜻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겉멋에 지나지 않으며 참 멋이란 내면세계의 모습이 행위로 나타날 때다.
유명한 어떤 테니스 선수는 심판의 오심으로 한 포인트의 득을 보게되자 다음 순간에 고의로 실수를 범하여 그 부당한 득점을 자연스럽게 포기했다고 한다. 또한 옛날에 단천령이라고 하는 피리의 명수가 임꺽정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소굴로 끌려간 일이 있었다. 도적들은 단천령에게 피리를 불어 볼 것을 청하였고 단천령이 계면조를 구성지게 불자 그 슬프고 처절한 피리소리에 도적들은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때 두목 임꺽정은 도적들이 감상에 젖는 것은 금물이기 때문에 피리불기를 중지시키고 말았는데, 부하들이 그를 살려서 내려 보내면 관에다 밀고할 것이 두려워 죽이려하자 임꺽정이 신표까지 주어서 집으로 돌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예술가를 대접한 임꺽정은 비록 도적이었지만 멋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네델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도 멋있는 사람이었다. 스피노자는 민족적 종교인 유태교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있을 때 아버지가 남긴 거액의 재산 상속문제로 누이와 치열한 법적 투쟁을 벌인 일이 있었는데, 재판에서 승소하자 모든 유산을 누이에게 물려주고 말았다. 그는 정의를 위하여 법정에 섰을 뿐 재산을 누이에게 물려줌으로써 남매의 정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 또한 멋있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꾸어 가야할 멋으로는 ‘능력 있다’ ‘잘생겼다’ ‘아름답다’ ‘예쁘다’고 하는 겉멋만 부린 것 말고, 한국인의 정서에 어울리는 ‘진정한 멋’으로서 ‘멋있는 사람’이라든가, ‘멋있는 사회’를 그려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추구해야할 최고가치의 찬사는 “당신은 정말 멋있는 사람입니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참 멋’이라고 하는 것 - 그것은 욕심이 채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불평했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화를 냈고, 이해하기보다는 비판에 앞섰고, 덮어주기보다는 들추기를 좋아했고, 감싸주기보다는 아픈 곳을 건드렸으며, 별 것 아닌데 잘난 척 했던 지난날들을 뉘우쳐 보는 것이다.
무엇이 생겨서가 아니라 나에게 무엇이 발생하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남과 비교하여 자신을 미워하거나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고, 남들보다 조금 앞섰다고 자랑하지 않으며, 나를 사랑해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나를 공격해준 사람에게도 감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한해를 마감하면서 생각해 볼 때 상대방에게는 가장 기쁜 선물이 될 것이며, 나를 더욱 너그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나아가서는 밝고 건강한 사회를 이룩해 가는 멋있는 삶이 아닐까.
신디의 남자처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