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을 안고 출발했던 2001년이 어느덧 저물어간다. 올 한해는 9월11일 뉴욕과 워싱턴DC를 강타한 테러사건으로 온 미국이 요동쳤고 한인사회에서는 두 형제가 자신이 일군 삶터에서 강도에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등 사건으로 얼룩진 한해로 기록됐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간을 한인사회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취재했던 사회부 기자들의 못다한 얘기들을 담아본다.
참석자: 권기준 부장, 하천식 차장대우, 황성락 차장대우, 조환동 차장대우, 구성훈 기자, 김종하 기자, 하은선 기자, 김중석 기자.
-2001년은 9월11일 테러사건 때문에 시간이 더욱 빨리 지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만큼 미국사회가 받은 충격과 영향이 엄청났다는 의미지요. 미주한인언론 사상 최초의 아프가니스탄 종군기자 파견은 국내외와 미주 한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종군기자는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야하기 때문에 다른 취재와는 다릅니다. 실제로 8명이 취재도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갈때는 몰랐는데 현지에 도착, 무장군인들을 보면서 소름이 쫙 기쳤습니다. 특히 반미데모를 하면서 성조기를 불태우는 것으로 볼때는 섬뜩했지요.
▲경비도 대단했습니다. 한달간 현지에서 체류하는 동안 사용한 전화비만 4,800달러가 나왔으니 얼마가 들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한인 언론인으론 최초로 전쟁을 수행중인 항공모함에 탑승해 취재하는 기록도 세웠고 당시로는 언론인이 갈 수 있는 최전방까지 갔습니다.▲수백명의 기자들이 탑승신청을 해놓고도 한달이상 기다리는데 본보가 일주일만에 탑승한 것은 ‘한인사회 유일’이라는 프리미엄이 작용한 것입니다. 가는도중 항모로 이동하기 위해 탑승한 비행기가 낡아 기체고장으로 도중에 다시 바레인으로 되돌아 올때는 ‘솔직히 아 이제 죽는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테러발생 직후 편집국에서 벌어졌던 비상상황은 기자생활의 짜릿한 맛을 보여줬다고 할 수있습니다.▲LA시간 새벽 6시부터 비상연락을 받은 기자들은 제대로 옷도 입지 못한채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황급히 사무실로 달려왔습니다. 사상 초유의 테러사건이라는 중압감 때문인지 사무실내의 무거웠던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편집국은 곧바로 전쟁터로 돌변했습니다. 전화벨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최대한 빨리 호외를 만들기 위해 기자들은 뛰어 다니다시피 했습니다. 마침내 오전 9시가 갓 넘을 무렵 첫 호외를 손에 드는 순간의 쾌감은 기자만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롱비치 단스리커 김씨 형제의 죽음은 올해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또 염승철군 재판도 한인사회의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웬만한 사건이면 1-2명이 기본이지만 이 사건에는 4명의 사회부 기자가 투입돼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습니다. 사건을 많이 다루다 보면 어떤 경우 직감적으로 이 사건이 잘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느끼게 됩니다. 이 사건의 경우 주민들과 김씨 형제와 관계가 좋았고 주민들이 스스로 범인검거에 협조하고 나서 예상보다 빨리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김경선·경민 형제가 강도들에 의해 피살된 것을 보면서 언제까지 이같은 비극이 계속돼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사건당시 14세였던 철부지 소년이었던 염군을 보면서 항상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처럼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번 재판과정에서 염군의 아버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기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일부에서는 아버지가 증언을 거부했다는 소식도 들렸고 사건직후 집안에 있던 고가의 살림살이들을 헐값에 모두 처분해 버리고 한국으로 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들이 저지른 범죄로 받았을 충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번도 법정에 나타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유죄가 평결됐다는 소식을 접한 친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의문입니다.
▲음주운전 사고는 올해도 끊이지 않아 한인과 음주운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수없이 많은 음주운전 관련 기사를 내보내며 경각심을 심어줘도 이같은 일이 잇달아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나’하는 자문과 함께’정말 대책이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강도·강간 등의 죄를 짓고 한국으로 도피했던 에디 강씨의 강제송환과 관련, 강씨 아버지의 구명노력은 정말 집요했습니다. 강씨 아버지는 한국에서 유명 변호사를 채용하는 등 아들의 미국송환을 막기 위해 막판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간 조약을 위헌이라며 시비삼고 피해여성을 윤락녀로 비하하며 아들의 죄를 정당화시키려고 한 것은 너무 지나친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자식이 소중한 만큼 피해자의 인권 또한 존중돼야 할 것입니다.
-한인단체에서는 올해도 많은 잡음이 발생, 한인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한인회장 선거열기가 벌써 일고 있습니다.
▲월드컵 남가주후원회를 둘러싸고 유관단체들 사이에 돌출 됐던 잡음은 올 상반기 한인타운을 시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스칼렛 엄씨가 상임공동회장을 맡은 남가주후원회와 이 후원회의 정통성을 문제삼고 나온 하기환 한인회장 간의 갈등이 원인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월드컵후원회가 뭐길래’ ‘한인회장 선거에 이은 제2라운드 대결’ 등 냉소 섞인 말들이 나올 정도였지요. 차기 한인회장선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꺼지지 않은 두 인사의 갈등의 불씨가 혹시라도 단체들간 반목을 재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10기 LA평통회장 인선을 둘러싼 갖가지 로비와 루머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본국 유명정치인들을 동원해 평통사무국에 압력을 넣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얼마전 LA를 방문했던 김민하 수석부의장도 "여기저기서 많은 전화가 걸려 왔었다"고 말해 로비전이 치열했음을 암시했습니다. 그같은 정열을 한인사회의 주류사회 정착에 쏟아넣으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내년 5월 한인회장에 나설 후보들이 벌써부터 선거전에 돌입하는 등 불꽃 튀는 경쟁이 예견되고 있습니다. 현재 후보로 나설 것이 확실시되는 인사는 한인회의 지원사격을 받고있는 김경재 현 수석부회장과 5년 전부터 표밭을 다져왔다는 남문기 남가주 해병전우회장, 그리고 한인회의 세대교체를 부르짖고 있는 강종민 한인사업가협회장 등 3명입니다. 지난해 선거에 출마했던 스칼렛 엄 월드컵 남가주후원회장이 재출마를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하기환 회장 측은 ‘엄씨가 재출마하면 나도 출마한다’며 벌써부터 으르렁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됩니다.
-최근 LA를 거쳐간 총영사들은 저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때문에 자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올해 2월 부임한 성정경 총영사는 ‘너무 나서지도 않고 너무 움츠리지도 않는’ 비교적 중도형의 무난한 총영사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총영사관 내부에서는 과거의 총영사들에 비해 성 총영사가 ‘민주적이고, 융통성이 있다’는 평가입니다. 내년에 현재 2층에 있는 민원실이 1층으로 옮겨가면 영사관 분위기도 많이 바뀔 듯 싶습니다. 총영사가 부임직후 추진했던 팔만대장경 공연이 당초 이 공연을 추진했던 월드컵 후원회와의 의견조율 실패로 무산된 것은 옥의 티였습니다.
▲사실 전임자중에는 서울에만 눈을 맞춰 한인사회와의 관계증진에 너무 소홀했던 인사도 있었고 반대로 너무 공격적인 자세로 업무를 추진해 오히려 한인사회를 쫒아가기 바빴던 분도 계셨습니다. 총영사의 성향이 한인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다사다난’이란 말처럼 사건·사고외에 다른 일도 많았습니다.▲LA시를 비롯해 각 정부기관에 젊은 한인인재들이 등용된 것에서 볼 수 있듯 이제 한인사회는 2세 중심으로 축이 옮겨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해였습니다. 특히 단 유씨가 부시장에 오른 것은 한인이민사의 쾌거라고 평가해도 좋을 듯 합니다. 영어에 능통하고 미국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앞으로 우리 한인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기대가 큽니다.
▲미국거주 한인 10명중 한명이 혼혈이라는 분석결과는 저절로 주변을 살펴보게 될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사실 우리 문화는 아직 타인종과의 결혼에 관대하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이처럼 많을 것이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이제 혼혈한인을 끌어 안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일부에서는 ‘아이들이 타인종을 배우자로 택해도 뭐라고 할말이 없게 됐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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