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식수술 6년 후, 해발 1만934피트 정상 올라
켈리 퍼킨스(40)가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이르렀을 때의 감회는 다른 등산가들이 정상을 정복한 후의 느낌과는 달랐다. 퍼킨스에게 킬리만자로 정복이란 심장병으로 10년간 투병하던 중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6년전 이식수술을 통해 새로운 심장을 갖게 된 후 그녀는 산을 사랑하던 자신의 옛 생활을 천천히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마침내 지난 10월21일, 여드레 동안의 산행 끝에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해발 1만9,340피트의 킬리만자로 정상을 밟게 된 것이다.
건강한 젊은 여성이었던 퍼킨스는 자신이 심장병에 걸리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녀가 심장에 이상을 느낀 것을 서른 살 때.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짧아졌으나 처음엔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결국 500만명 가까운 미국인이 앓고 있는 심장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처럼 젊은 경우에 발병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했다. 그녀의 병은 바이러스가 심장근육을 손상시켜서 피를 효율적으로 펌프질하기엔 너무 약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켈리는 자기 집 층계를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서 생명도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갔으나 1995년 11월 UCLA 병원에서 새 심장을 이식 받았다. 이식경과는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면역체계가 새 심장을 이물질로 판단하고 공격하는 바람에 다시 한번 생사의 기로를 헤매야 했다.
면역반응을 잠재우는 치료를 받고 마침내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5개월 뒤 라구나니겔에 있는 집 부근의 가파른 등산로에서 하이킹 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그녀는 북미주의 최고봉인 휘트니산을 올랐는데 이것이 퍼킨스에게는 회복의 전환점이 되었다. 보다 험난한 도전을 꿈꾸게 된 것이다.
탄자니아에 있는 킬리만자로는 그녀의 목표에 알맞은 산이었다. 켈리와 남편 크레이그, 친구인 수전은 가이드와 함께 팀을 이루어 지난 10월15일, 섭씨 21도의 날씨에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 켈리는 겉보기에는 건강한 것 같아도 심장이식과 관련해서 아직도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고 UCLA의 심장이식 프로그램 책임자인 존 코바시가와는 설명했다. 이식수술이 심장과 뇌 사이의 신경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경사가 심한 언덕을 오를 때에도 심장은 더 빨리 뛰라는 뇌의 명령을 전달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몇분 못 가서 현기증을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도 몸은 심장기능을 조절하는 다른 방법을 갖고 있다. 몇분이 지나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맥박이 빨라졌다. 그 대신 비탈길이 끝나도 맥박이 금방 가라앉지는 않았다.
그녀는 "정상에 오르던 날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팀은 바람이 가라앉는 상오 12시반에 출발했는데, 그날따라 바람은 잦아들기는커녕 더 세게 불었다.
시속 25마일에서 40마일까지 불어대는 바람은 체감온도를 영하 29도까지 떨어뜨렸다. 심지어 체중 105파운드인 켈리가 바람에 밀려 넘어지기까지 하자 크레이그가 앞장을 서서 바람막이로 나섰다. "해가 뜨자 바람이 가라앉더군요. 그때부턴 켈리가 다시 앞에 나서 리더 노릇을 했죠" 크레이그의 말이다.
정상 바로 못미처 분화구에 이르렀을 때 크레이그는 고산병이 일어나 베이스캠프로 돌아가기로 했다. 켈리는 남은 멤버들과 정상에 올랐는데, 심장이식을 받은 사람의 등반기록을 무려 5,000피트나 넘어서는 신기록을 세운 것이기도 했다. 내려오는 길도 조심스러웠지만, 이튿날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었다.
켈리의 경우는 남의 심장을 이식 받은 사람이라도 심장 기능을 극한까지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펜실베니아대 심장이식 전문의이자 미국심장협회 대변인인 티모시 가드너는 말한다.
"심장을 이식 받은 사람도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가드너는 자신을 비롯한 심장 전문의들이 심장이식을 받은 환자들에게 규칙적인 운동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심장기능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켈리와 크레이그는 이번 킬리만자로 등정 성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장기 기증을 고려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켈리도 기증 받은 심장이 있었기에 다시 살아나 또 하나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는 킬리만자로에 가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은 가게 할 수 있음을 저를 보면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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