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달라졌다. 앞으로의 삶은 결코 옛날과 같을 수가 없다. 공포와 동거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2001년 9월11일. 그날 이후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는 이야기다. "사실 별 걱정거리도 아닌 걸 걱정하면서 살아왔다. 삶의 본질과 아무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극히 사소한 문제에 집착해 온 세월이었다…" 2001년 9월11일. 그날 이전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치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니, 그렇지도 않다. 전천후로 이어지는 선거, 다시 말해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정치권의 생리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어 보여서다.
만약 테러사건이 2000년 대선 전에 발생 했다면 부시가 대통령이 됐을까. 안됐다고 보아야 한다. 공직자로서 부시의 경력은 텍사스 주지사가 고작이고 해외정책에는 사실상 문외한이었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당연히 해외정책에 경험이 풍부한 고어를 선택했을 것이다.
사실 미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해외정책이었다. 이와 함께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된 게 위기관리 능력이었다. 이는 적어도 90년대 이전까지는 상식이었다. 시대가 냉전시대인 만큼, 말하자면 일종의 시대적 요구였다.
트루먼·아이젠하워·케네디·닉슨 또 아버지 부시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보인다. 해외정책에 최우선을 둔 하나 같이 파이터형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가 실제 참전 베테란이다. 이 ‘전사형’(warrior) 지도자들이 소련과의 긴 투쟁을 결국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이런 전통에 비추어 볼 때 클린턴은 변종 대통령이었다. 더 이상 ‘전사’로서의 지도자가 필요 없는 시대에 선출된 지도자다. 이런 클린턴 시대는 풍요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 시대의 모토는’whatever…’였다.
’whatever…’가 모토인 시절은 무관심의 시대다. 풍요속에 숨막힐 듯한 평온. 그 가운데 온통 관심은 스캔들에만 쏠려 있었다. ‘대통령은 그 여자와 섹스를 했는가’ 따위의 관심이었다.
2001년 9월11일. 그날 이후 미정치권에는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치 지도자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요구조건이 달라져서다. 능률만이 아닌 용기, 결단 등 전사로서의 자질도 갖춘 지도자 상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벌써부터 차기 대권문제가 새삼 거론되고 있다.
’해외정책을 모르는 대통령은 곤란하지 않을까’-. 2004년을 바라보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다. 테러전쟁이 세계전쟁 양상을 보이는 데 따른 것으로 더 이상 국내 아젠다만이 통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진단이다.
2000년 대선이 끝난 직후 한 때 이런 전망이 나왔다. "차기 대선은 또 한차례 ‘부시 대 클린턴’의 일전이 될 것이다." 부시는 아들 부시다. 클린턴은 와이프 클린턴이다. 조지 W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의 대결이 된다는 전망이었다.
W 부시가 소수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으로 결국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가정과 함께 나온 전망이었다. 테러전쟁을 계산에 넣지 않은 전망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2004년 민주당 대권후보로 유력시 되는 인물은 조셉 바이든, 크리스토퍼 도드, 존 케리 등으로 순위가 바뀌었다. 하나같이 민주당내 해외정책 통들이다. 고어의 부활 가능성도 점쳐진다. 풍부한 해외정책 경험이 그 이유다.
맥케인은 여전히 강력한 공화당내 다크 호스다. 베트남 참전 영웅이라는 경력 때문이다. 부시가 아차 실족할 때 차기 공화당 대권주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장황하다. 그렇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선거는 미국 정치의 상수(常數)다. 시대는 변수(變數)다. 그러므로 시대가 바뀌면 지도자 상도 바뀐다’-.
"우리 시대의 평생을 지배한 것은 바로 ‘권위주의’라는 것이었다. 이승만의 궁정 권위주의, 박정희의 집정관적 권위주의, 그리고 YS·DJ의 문민 권위주의… 도대체 이 권위주의의 족쇄에서 우리가 풀려날 길은 영 없다는 것인가?" 대권 계절의 초입. 한국의 한 논객이 내뱉은 신음이다.
그 신음은 이렇게 들린다. "선거는 하나마나,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게 한국의 지도자다. 한국 정치의 상수는 그러므로 권위주의다. 카키색으로 덧입혀지든, 문민의 청회색으로 덧입혀지든…" .
대권경쟁에 나선 정치인이 줄잡아 벌써 10명에 가깝다. 계절이 무르익으면서 대권 지망생은 더 늘어날 것 같다. 그런데 ‘글쎄…’란 느낌이다. 어딘지 민의라든지, 정치소비자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서다. 왜 그들은 대통령이 되려는 걸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