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형태 변화...항공산업, 고급차 판매부진
지난 9월11일에 발생한 미증유의 테러참사는 미국인들의 소비 행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테러사건과 아프가니스탄 공습 와중에서 일련의 사태가 미국 경제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항공여행산업의 침체, 고급 승용차 판매부진, 고급 레스토랑의 매출 부진 등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 테러사건 이후 미국인들은 소비패턴에서도 상처 입은 마음에 위안을 찾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 가정적 가치에 대한 각성도 새로운 소비패턴에서 읽혀진다.
예를 들어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바느질이나 뜨개질, 스크랩북, 그리고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레고 놀이나 볼링게임 등의 인기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관련 사업가들은 "테러 덕분에 돈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표정관리를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인터넷 리서치 레드북에 따르면, 테러사건 이후 전반적 소매량은 줄었으나 집안에서 소일하는데 도움이 되는 양초나 DVD 같은 품목들은 기록적 판매증가를 기록했다. 또한 맥도널드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 또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 종류의 매출도 큰 폭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소비 행태 변화에 대해, 캘리포니아 모로베이에서 ‘카튼 볼’이라는 수예점을 운영하는 주디 에펠은 이렇게 분석한다.
"사람들은 바느질하고, 창조적 일에 매달리려고 한다. 기본에 충실한 삶의 패턴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에펠의 스토어에도 테러사건이 발생한지 몇 시간 후부터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테러사건 이후 미전역에서 예술공예품 가게들이 비슷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
700여 체인점을 거느린 예술공예품 전문점 ‘마이클스 스토어스’도 최근, 올 연말에 전년대비 최고 10%의 판매증가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취미산업협회의 수잔 브랜트는 "예술공예품은 위기의 시기에 잘 팔리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테러사태가 몰고 온 또 한 가지의 두드러진 변화는 미전역에서 다시 볼링붐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풋트남은 자신이 쓴 ‘오직 볼링뿐: 미국 공동체의 붕괴와 재생’이라는 책에서 미국볼링 저변인구 붕괴를 개탄한 바 있다. 그런데 테러사건 이후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서로간 유대강화를 목적으로 볼링장을 찾는 사례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볼 뉴잉글랜드’라는 볼링장 체인을 운영하는 딕 콜리는 9월 마지막 두 주간 연속, 볼링장들이 만원사태를 기록했다고 전한다. 볼 뉴잉글랜드는 7개주에 걸쳐 13개의 볼링센터를 운영한다.
"테러사건 이후 사람들이 친구나 이웃 등 주변 사람들과 함께 모여 가족적 분위기를 맛보고 싶어한다"
콜리의 해석이다.
자녀들과 함께 놀아줄 시간이 없는 부모들은 차선책으로 그들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는 물건들을 사다주고 있다.
요즘 기록적인 흥행기록을 작성중인 영화, ‘해리 포터’ 신드롬 역시, 일정부분 테러사건 덕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 있어 흥미롭다.
영화산업 관계자들은 원래 이 영화의 주인공, 소년마법사 인형들을 비롯한 영화관련 상품들의 판매 전망에 대해 비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9.11 테러사건이 상황을 일거에 뒤집어 놓고 말았다.
"테러사건 이후 아동들이 안전하고 친숙한 캐릭터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책을 통해 이미 친숙해진 해리 포터 레고 키트가 잘 팔리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레고 제작업자 마이클 맥날리는 말한다.
맨해턴의 장난감 전문백화점 FAO 쉬바츠의 데이비드 니글리도 "레고뿐 아니라 해리 포터 영화와 관련된 모든 장난감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전한다.
경제가 불황일 때는 대형 가전제품 시장이 된서리를 맞기 십상이다. 그런데, 테러사건 이후 유독 DVD 시장은 폭발적 매출증가를 보이고 있다. 주말이면 술집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던 젊은이들 가운데, 와이드 스크린 TV와 안방극장 시스템을 구입, 가정에서 조용히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테러사건은 미국인들의 식생활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고급 레스토랑들이 매출 감소를 겪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맥도널드나 타코벨 같은 패스트푸드 음식점들은 연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수퍼마켓에서도 캔디, 피넛버터,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 종류 식품들이 많이 팔려나간다. 특히, 냉동 케이크류는 기온이 떨어지는 9월 초부터 매상이 급감하는 것이 상식인데, 올해는 테러공격 이후 오히려 30% 이상의 매출신장을 기록했다.
샌프란시스코 거주 33세의 직장 여성 레이지 애브리우의 하루일과가 요즘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애브리우는 테러사건 이후, 한동안 해오던 다이어트 점심을 팽개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버리도스와 땅콩 초컬릿을 마음껏 먹는다. 저녁식사도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 대신,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먹곤 한다.
또 밤늦은 시간에는 거실 소파에 푹 눌러앉아 만화채널을 보면서, 평소 좋아하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퍼다 먹는다.
"당분간은 매일매일 겪는 시시콜콜한 문제들에 신경 쓰지 않고 가능한 마음 편하게만 살고 싶다"
애브리우는 자신의 최근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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