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사태 후 맞는 올해의 추수감사절은 우리들에게 예년과는 다른 감회를 가지고 보내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의 두려움으로 시달리며 삶이 위축뒤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요즈음 나는 평상심을 잃지 않고 삶에 충실하는 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하며 편안하고 여유있는 마음의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불확실하다는 사실 이외엔 확실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불안의 시대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의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힘에 온전히 의탁할 수 밖에 없음에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나라를 믿고 그 분의 한없는 사랑과 보호속에서 살고있다는 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그 분과의 교제의 통로가 되어주셔서 매일 매일 기쁨과 감사의 시간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동행해 주시는 고마우신 친구요 모사(模士:Wonderful Councellor)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감사ㅎ고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날 버리고 떠나버린다 해도 궁극의 존재이신 그 분만은 여전히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날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그 분만은 날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가 아닌가.
눈물과 한숨과 어두움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며 두려움과 부정적 생각으로 절망하며 헤매던 내 황폐한 영혼의 뜰에 단비를 내리시며 위로하시며 직접 찾아주신 주님, “넘치고 넘치도록 부어주겠다” 약속하시며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게서 빼앗아 갈 자가 없느니라. 너는 이런 일 기억지 말라… 너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너를 굳세게 하고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해 주시는 분.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과 수많은 논리와 체계의 수렁 속에서 나홀로 외로이 헤매며 내 의지로 내 삶을 빚어보려고 허우적거릴 때 그곳에서 날 건져주시고 조금씩 가르치시며 변화시켜 가시는 분, 그 때부터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는 절대적 믿음을 확인하며 살게 해 주신 분, 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나’(내가 나에게 바치는 사랑만을 원키만 하여 지난날의 나의 모든 불행들을 초래케 했던) 그 ‘나’를 정복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해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내며 전전긍긍하던 ‘나’를 내 안에 계신 그 분께서 그 ‘나’가 고개를 들 때마다 잠재워 버리시는 그 분, 삶의 순간 순간에 닥치는 어려움과 장애물들이 인생을 더욱 값지고 맛있게 하는 하나님의 조미료였음을 깨닫게 해주시어 긴 어둠 속에서도 절망치 않고 하늘의 별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뒷그림을 볼 수 있는 눈과 지혜를 주신 분.
개(犬:Dog)같은 삶을 살 수도 있었을지 모를 나를 신(神:God)처럼, 신에 취해 살게 해 주신 분, 부질없는 세상의 어른들의 허망한 장난감들을 나 또한 탐내며 내가 가진 것들과 비교하는 버릇을 모두 치워주시고 그것들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 주신 분, 무엇보다도 다른 종교가 얼버무리고 외면하는 궁극적 문제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느니라” 시원하게 말씀해 주신 분.
세상에 어느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라 했던가. 어느 누가 사람을 변화시켜 주는가. 이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지식인과 학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 해서 어찌 그 분이 존재하지 않으실까.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 “도(道)인 예수가 본래 하나님의 본체(本體)셨으나 그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서 ‘성육신’했다.<빌립보서 2:7>는 말씀은 ‘도’ 중의 ‘도’이고 신비스럽지 않은가.
이 아름다운 추수감사의 계절, Thanksgiving:주신 것에 감사/진정한 감사는 기쁨으로 주는 것, 이 함축성 있는 단어를 지은 미국, 무엇보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믿음의 씨를 뿌리며 제일 먼저 만든 명절. 그 신앙으로 하나님의 주권 위에 세운 이 나라에서 값없이 누리며 살게 된 것도 그 분의 뜻, 榮位勢利如寄客(영위세리여기객)이다.
영원한 복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 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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