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틀스 이후 영국이 낳은 최대 문화상품’이라는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
그 첫 번째 이야기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감독 크리스 콜럼버스)이 영화로 만들어져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16일 북미에서 개봉해 개봉 첫 주말 3일 동안 9,351만 5,000달러, 최단 기간(4일) 1억 달러 돌파, 12일 만에 2억 달러 달성, 3,672개의 상영관 등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과 같은 날 개봉한 영국에서도 첫 주말 흥행 신기록(2,220만 달러)은 당연하고, 독일(2,500만 달러)과 대만(230만 달러)에서도 기록을 갈아 치웠다.
싱가포르, 브라질, 멕시코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어린이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준다’는 독일 언론의 비판이 시샘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12월 14일이면 그 기세를 업고 열 한 살짜리 꼬마 해리 포터가 한국을 찾는다.
열풍은 한국도 못지 않다. 4주전(17일)부터 예매를 시작한 서울, 부산에서만 벌써 5만 장. 서울의 메가박스, CGV강변 등은 벌써 첫 주말 표가 동이 났다.
이미 확보한 상영관만 전국 160여 개.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 코리아는 전국 최다인 2만 3,000석까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흥행 역시 “ ‘타이타닉’(전국 450만 명)만 깨면 된다”는 처음 목표와 달리 500만 명 이상으로 잡았다. 책이 400만 부나 팔렸으니 무리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의외로 복병이 많다. 같은 날 두 편의 한국영화 ‘화산고’와 ‘두사부일체’가 출사표를 던진다.
‘화산고’는 10대를 겨냥한 ‘청춘 판타지액션’으로, ‘두사부일체’는 ‘조폭 코믹영화 불패’ 신화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점에서 ‘해리포터’에게는 위협적이다.
여기에 디즈니의 판타지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12월 21일 개봉)와 ‘해리 포터…’ 의 선배 격인 ‘반지의 제왕’(12월 28일 개봉)이 뒤를 잇는다.
2시간 32분이란 긴 상영시간도 핸디캡이다. 주 관객이 어린이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할리우드가 ‘해리 포터…’를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원작자 조앤 롤링의 수락 조건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원작에 충실하라. 영국 배우를 써라.
비록 영화산업은 뒤져 제작은 너희들에게 맡기지만, 알맹이는 우리 영국의 것이라는 강한 자부심이다.
영화는 그 요구에 충실했다. 할리우드의 상상력과 과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순서와 대사를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영화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배우 역시 조연 한 명만 빼고 모두 영국 출신이다.
4만 명의 지원자에서 뽑은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소설 표지에 그려진 해리와 너무나 닮았고, 그와 삼총사를 이룰 론 위즐리 역의 루퍼트 그린트와 헤르미온느 역의 엠마 왓슨도 소설 속의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셋은 2편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도 그대로 나올 예정이다.
덤블도어 교수 역인 리처드 해리스나 해그리드가 된 로비 콜트레인, 맥고나걸 교수인 매기 스미스 역시 영국 출신이다.
영화는 그만큼 원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 숙명이야말로 영화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글로 표현한 상상력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은 주지만, 소설을 뛰어넘는 영화적 상상력이나 변주를 차단했다.
차라리 소설에 별 흥미가 없었거나, 아예 읽지 않았다면 영화가 훨씬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리즈 제1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이모 집에 구박 받으며 살던 해리 포터가 마법학교에 들어가서 두 친구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신비의 돌을 지키는 이야기이다.
새삼 줄거리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책을 안 읽은 사람도 마법이란 판타지에 빠질 준비가 돼 있으면 금방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영화는 서론에 해당하는 이모 집에서의 생활을 짧게 줄였다. 대신 그 시간을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의 모험과 환상에 할애했다.
가장 고전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캐릭터와 특수효과, 화려한 소품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특수분장으로 도깨비가 웃음을 주면, 왕실 못지않은 풍성한 식탁이 눈을 황홀하게 하고, 컴퓨터그래픽으로 창조한 온갖 유령과 마술이 신기하기만 하다.
적어도 영화 ‘해리 포터…’는 환상과 어드벤처에서는 소설보다 분명 뛰어나다.
어린이판 ‘인디애나 존스’의 무대를 공중에 옮겨 놓은 듯한, 빗자루를 타고 벌이는 신나고 스릴 넘치는 퀴디치 경기(럭비와 폴로를 혼합한 게임)도 그렇고 세 아이가 마법의 돌을 찾으러 가는 길에서 벌이는 살아있는 체스판에서의 무시무시하고 아슬아슬한 승부는 글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표현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의 힘’이란 주제는 원작을 따랐으니 차치하고더라도 ‘해리 포터…’는 몇 가지 약점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아이들영화이고, 기술의 볼거리 영화가 됐다.
론 위즐리를 빼고는 긴장감이나 감정이 부족한 아이들의 연기. 어른들조차 그 분위기에 취해 특수효과로 만들어낸 캐릭터들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주인공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퀴디치 경기와 1년 동안의 성적 계산에서 반전도 너무 단순하다. 원작에 나오는 내용을 생략해 스네이프 교수가 왜 해리 포터를 못마땅하게 대했는지도 알 수 없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췄으니 그보다는 볼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소설을 읽었을 테니 감안하고 보라는 것인지.
영화 ‘해리 포터…’는 원작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 원작의 뛰어난 판타지를 영상으로 살려낸 것만은 틀림없다.
눈으로 즐겁게 다시 읽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시작은 실망스럽지 않다.
’해리 포터…’는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일종의 ‘신드롬’이다.
그렇다면 이 신드롬은 누가 만드는가. 4일 런던 레스터스퀘어 오데온 극장에서 열린 첫 시사회는 영국 문화계가 ‘해리 포터…’에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자리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손녀들을 비롯해 영국 유명 인사들의 가족잔치 같은 시사회가 보여주듯, 11세 꼬마 마법사는 할리우드에 주눅들어온 영국의 영화적 자존심을 되살렸다.
코카콜라와 마케팅 계약을 통해 이미 1억 파운드(1,900억 원)를 받아 제작비(1억 6,000만달러) 본전을 뽑았고, 영화 수입만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임에 빠진 소년을 구원했다’는 소설 ‘해리포터’의 영광은 영화에 대한 부모들의 열렬한 지지까지 동시에 끌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해리 포터’로 가장 타격을 입은 사람은?
경쟁작인 디즈니의 ‘몬스터주식회사’? 아니다. 미국에서 ‘빛과 어두움의 경쟁’이라고 불리는 ‘해리 포터와 X박스의 경쟁’에서 초반전은 분명 해리 포터가 우세하다.
15일 출시된MS사의 ‘X박스’는 인터넷 게임을 대체할 콘솔형 게임기로 일본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 2’의 강력한 경쟁자로 점쳐지고 있다.
물론 판매 개시 직후 30만대가 팔리면서 신세대들의 호응을 얻고는 있지만 내년 1ㆍ4분기 5억 달러, 2분기 8억 달러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면 해리 포터는 연일 기록을 갱신하면서 초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여러모로 해리 포터는 ‘양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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