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내 사랑이여. 머물러주오. 그대와 함께라면 매일 매일이 발렌타인 데이라오. (Each day is Valentine’s day)"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 퍼니 발렌타인’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발렌타인 데이와 같이 핑크 빛으로 채색할 줄 아는 남자라면 시요노 나나미 말대로 신발 벗어들고 사막 끝까지 뒤따르고 싶다.
해의 길이가 짧아서인지 추수감사절이 지나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연시가 찾아온다. 아차하다 보면 가장 소중한 사람과 얼굴 한 번 마주 대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또 한해를 보내기 일쑤.
함께 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단 둘이 일상을 뒤로하고 떠난 여행만큼 낭만적인 것이 또 있을까. 이런 목적을 위한 여행이 꼭 며칠 씩 묶고 와야 하는 것도, 어디 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 것도 아닐 게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라 할 지라도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은 살만큼 살아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심드렁한 부부 사이에 탄력을 준다.
샌타모니카, 패사디나, 할리웃, 라구나 비치 등 LA근교 곳곳에는 B&B (Bed & Breakfast)라는 독특한 형태의 숙박시설들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비밀처럼 간직하고 싶은 정보이지만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그 보따리를 푼다.
편안한 잠자리와 그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B&B는 살림 솜씨 좋은 유럽 출신의 아낙네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곳이 많다. 일반 호텔들과 조금씩 다른 섬세한 터치는 B&B에서의 하룻밤을 이태리의 작은 도시를 여행하다 묵었던 로칸다 (Locanda), 옥스퍼드 교외의 깔끔한 B&B에서의 추억만큼 소중한 것으로 만든다.
샌타모니카의 B&B, 채널 로드 인 (Channel Road Inn). 뉴욕 타임스, LA 매거진, 그리고 여행 전문 잡지 선셋 매거진에서 "LA의 오아시스"라는 표현을 비롯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낮이면 태양을 반사한 바다는 은빛으로 부서지고 저녁이면 황금색 지는 해의 그림자가 눈부시게 반짝이는 곳이 이곳이다.
에밀 졸라의 후손과 결혼해 ‘졸라’라는 성을 가진 안주인, 수잔 졸라 (Susan Zola)는 타고난 인테리어 감각으로 자신의 아담한 B&B를 베터 홈즈 앤 가든즈의 표지로나 나올 법한 모델 하우스처럼 예쁘게 꾸몄다. 폭신한 보라색 소파, 빨갛게 타 들어가는 벽난로, 낡은 피아노... 손님들을 위해 안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와인과 치즈는 지는 석양과 함께 재즈 선율처럼 이제껏 잠들어 있던 관능을 일깨운다.
17개의 객실은 각기 독특하게 꾸며졌다. 아직도 남편 앞에 수줍은 당신이라면 꽃무늬의 커튼이 사랑스러운 빅토리아 스타일의 룸은 어떨지. 온통 하양과 파랑으로 단장한 방에서는 새소리를 들으며 함께 깨어나 맞는 아침 햇살도 상큼할 것 같다. 카노피가 높이 올려진 침대에서 하얀 망사를 통해 본 아내의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블랙 앤 화이트로 꾸민 현대적인 룸에서 만들어 가는 사랑은 색다른 느낌일 게다.
크림 색 장미꽃이 장식된 다이닝룸에서 마련되는 아침 식사. 커피의 향기로운 내음과 함께 갓 구워 낸 빵의 고소한 냄새가 행복한 미소를 엮어낸다. 체크아웃 시간인 정오까지 이 여유와 사치를 향유하려는 마음을 읽고 있다는 듯, 웃음 짓는 여주인의 친절이 고맙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아내의 손마디가 안타깝게 느껴졌다면 여왕보다 더한 사치스러움을 맛볼 수 있는 스윗 룸의 스파에서 마사지를 해주면 어떨까. 기분 좋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심신의 피로를 푼 뒤, 주변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다 보면 일상은 멀리 두고 온 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질 것이다.
방마다 마련된 노트에는 이곳에 묶었던 커플들이 특별한 하룻밤에의 감상을 적어 놓았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하룻밤 묶어 가는데,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랑이 새록새록 깊어가네요." 온통 영어의 감상을 안고 있는 노트는 어쩜 한국어로 느낌을 적어 남겨 주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따라 달릴 수 있는 자전거 코스를 눈앞에 두고 있는 채널 로드 인에서는 무료로 자전거도 빌려주고 있다. 주말 기준 1박 숙박비용은 165-350달러이다. 한국 일보 기사를 보고 왔다고 얘기하면 숙박비의 35달러를 할인해 주기로 했다.
예약 전화는 (310) 459-1920.
가는 길은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가 1번 PCH로 갈아타고 2마일 정도 가다 보면 W. Channel Rd.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좌회전하면 곧 왼쪽으로 Channel Road Inn이 나타난다. 주소, 218 W. Channel Rd. Santa Monica, CA 90402
그 외 남가주의 유명한 B&B들
▲플라야 델 레이 인 (Inn at Playa Del Rey) : 21개의 방들은 각기 다른 분위기로 꾸며졌다. 벽난로가 있는 방, 자쿠지가 딸린 방, 욕실에 벽난로가 있는 방 등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프렌치 도어 앞으로 펼쳐지는 요트가 정박한 마리나 델레이의 풍경이 아름답다. 435 Culver Bl. Playa Del Rey, CA 90293 예약 전화 (310) 574-9920.
▲카사 라구나 (Casa Laguna) : 고즈넉함 속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 한 잔에 삶은 장미 빛으로 채색된다. 화가들이 많이 사는 라구나 비치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B&B. 15개의 각기 다른 분위기의 방, 5개의 스윗 룸, 1개의 코티지가 있다. 숙박비는 120-395달러. 2510 S. Coast Hwy., Laguna Beach, CA 92651 예약 전화 (949) 494-2996, 주인, 프랑소아 리클레어 (Francois Leclair). www.casalaguna.com
▲스위츠랜드 하우스(Switzerland Haus) : 빅베어 호수 인근에 위치한 이 B&B는 알프스의 산장을 연상케 하는 오두막집 스타일. 잔잔한 호수를 끼고 있는 평화로운 산장은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도 그리고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를 제공한다. 아침 식사와 오후 녘의 스낵이 푸짐하다. 숙박비는 125-175달러. 41829 Swizerland Dr. Big Bear City 예약 전화 (800) 335-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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