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땅 위에 일군 한인 이민의 꿈. 50여년간의 엘파소 한인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이다. 한인들이 ‘미국인들이 내어놓은 땅’이라고 표현하는 엘파소는 텍사스주 서단에 자리잡고 있다. 정치인들은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인 엘파소를 텍사스 땅이라 부르지만 미국인들은 엘파소인들의 마음이 뉴멕시코에 있음을 안다. 휴스턴과 샌디에고의 딱 중간지점(각각 749마일과 724마일)이고 바로 서편에는 뉴멕시코 도시들이 인접해 있는 반면, 텍사스 주요 도시인 동편의 샌안토니오나 달라스는 사막 길을 9~11시간이나 달려가야 하는 거리이기 때문에 그같은 취급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엘파소는 전체 인구 68만명(위성도시를 포함한 메트로폴리탄 엘파소)의 77%가 히스패닉(대부분 멕시코계)이고 다리 하나 건너 남쪽에 있는 ‘쌍둥이 도시’인 멕시코의 후아레스(공식 인구 160만)와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텍사스와 멕시코의 문화가 융합되어 ‘텍스멕스’(Tex-Mex)라는 새로운 형태로 빚어지는 ‘미국 속의 멕시코’다. 주민들은 멕시코 방문을 "할아버지 댁에 놀러간다" "이모 집에 다니러 간다"고 표현한다.
비록 가구소득이 바닥권인 도시지만 엘파소에는 한인들을 마음 푸근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 스패니시로 장사하니 영어 스트레스가 없고, 순박한 멕시칸들을 상대하므로 안전하고, 수영장 딸린 3,000스퀘어피트 규모 주택이 15만달러선으로 모기지 부담 적고, 백인들이 적으니 기죽어 살 일 없는 것은 그 일부분에 불과하다. 바로 이곳에서 약 3,000명의 한인들이 로키산맥 끝자락인 프랭클린 산기슭의 다운타운 의류·잡화상가를 터전 삼아 국경장사로 아메리칸 드림을 꽃피우고 있다.
엘파소에 정착한 첫 한인은 50년에 들어온 ‘복자’라는 이름의 한인여성(지금은 사라진 ‘Kimchi Jar’라는 이름의 식당 겸 마켓을 72년에 오픈하기도 했다)이며, 53년 한국전 직후 토마스라는 성을 가진 미군 중령이 고아 1명을 한국에서 입양, 데려온 일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 후 54년과 55년 소수의 여성들이 미군들과 결혼, 한국에서 오면서 초기 이민사가 시작됐다. 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멕시칸들의 멸시도 많이 받았고 강도들의 총격을 접시로 막아가면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 엘파소 거주 29년째인 최한영 전 한인회장은 "지금 한인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길을 초기에 피로 닦았다"고 표현한다.
그 후 73년께 포트 블리스 육군 방공포부대 인근(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7마일 거리)에 거주하던 약 80명이 거의 전부였던 한인인구가 다운타운 경기가 불길처럼 일어나면서 82년에는 총 2,500명 정도로 급증했다. 2개밖에 없던 술집이 40여개로 늘어난 것도 그 무렵이다. 그 후 "엘파소만 가면 벼락부자 된다"는 소문이 퍼져나가 1986~88년 전후로 남미의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한인들의 2차 이민이 줄줄이 이어졌다. 당시엔 남미국가와 LA, 뉴욕 등지에서 오는 한인들이 한국에서 오는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고창순 골프협회장을 연줄 삼아 남미서 이주한 사람들만도 50여 세대에 달했다.
그러나 이같은 한인인구 유입의 급물살은 94년 멕시코의 2차 페소 가치 급락이라는 암초에 부딪힌다. 멕시칸 고객들이 급감, 의류업소의 하루 매상이 100달러선으로 곤두박질치자 새로 들어오는 이들이 눈에 띄게 줄었고 일부는 아예 보따리를 쌌다.하지만 엘파소 다운타운의 상권이 오늘날과 같은 번듯한 규모로 성장한 것은 한인들 덕분이다. 스탠튼 길과 엘파소 길에 주로 자리잡은 다운타운의 업소들중 한인 소유는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총 130여개로 파악된다. 그중 약 80%는 여자 의류, 잡화, 남자 의류업소이며, 나머지는 식당, 전자업소, 마켓, 신발가게 등이다. 특히 의류업소와 잡화업소는 한인들이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데 소매만 하는 곳과 도소매를 겸하는 곳이 각각 절반 가량이다. 고객의 90%는 다리를 건너 오는 멕시칸들이다.
루이도소 마켓을 운영하는 서정석 상공회장은 "다운타운 업소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며 "18년전 처음 왔을 때 토요일 다운타운이 남내문 시장 같이 붐비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의류, 잡화 외에는 식당이 약 30개인데 대부분 미국화된 중국식당과 일본식당이며, 한식당은 5개에 불과하다. 한국마켓은 4개가 영업을 하고 있다.
엘파소에는 커뮤니티를 위해 한인회, 상공회, 체육회 등의 한인단체가 조직돼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12개 교회가 이민자들의 영적 목마름을 해갈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영어, 스패니시, 한국어 등 3개 국어를 습득하게 된다.
엘파소는 요즘 한인인구가 정체를 보이고 있는데 미군들과 국제 결혼하는 한국여성들이 감소한 것이 주원인이라는 것이 이 지역 한인들의 자체 분석이다. 미국에서 가장 이용하기 편하다는 엘파소 국제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오면 다른 대도시에서 볼 수 없는 여유와 느림이 느껴져 한국서 온 사람들은 혹시 다른 나라에 온 게 아닌가 착각하게 된다는 사막 위의 한갓진 도시 엘파소. "한인들도 마음이 순박해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을 발 벗고 도와주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것이 천성우 한인회장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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