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서울의 정가는 대권을 건 전초전의 팡파르가 울린 가운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DJ의 민주당 총재직 사임으로 집권당 내 대권 레이스가 표면으로 떠오르고 그 시간표도 대폭 당겨진 탓이다. 16대 대통령선거는 내년 12월18일, 그러니까 꼭 1년 1개월을 남겨둔 시점에서 DJ는 전임자보다 반년이 빠르게 집권당 모자를 벗어 던졌다.
그 결심은 잘한 일이다.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를 청와대 종속물로 전락시킨 원죄가 바로 대통령의 집권당 총재 겸직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DJ가 그런 취지를 자인하고 자발적으로 결심을 한 게 아니라 순전히 국면에 밀린, 그러나 그 국면을 반전시키려는 노회한 결정에서 나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총재직을 내놓으면서 DJ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에 자율권을 주고 본인은 국정에만 전념하겠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진작에, 그리고 기왕이면 자발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정을 놓고 찧고 까부는 언사들은 자취를 감췄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말들이 많은 것을 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왜 DJ는 신주처럼 틀어쥐고 있던 집권당 모자를 벗어 던졌는가. 요즘 정가의 화두는 단연 "DJ의 숨은 그림 찾기"다. 총재 모자를 벗어 던지고 장막 뒤로 사라진 DJ가 과연 어떤 옷을 걸치고 다시 등장할 것인가 호기심과 의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민주당의 장래 모습과, DJ의 손에 이끌려 무대 전면에 나설 후계자의 얼굴과 무관치 않다. 민주당의 진로와 관련해선 두 가지 예측이 나온다. "대권주자 중 이긴 자를 민다"며 온전히 민주당 깃발을 그대로 가지고 가는 방안이다. 이 경우 당내 경선에서 이긴 자가 대선 후보로 한나라당 후보와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이다. 이 때에도 변수는 존재한다. 이인제의 행보다. 그가 경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풍파는 계속될 게 분명하다. 5년 전처럼 또다시 불복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민주당의 장래가 결정될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른바 신당 창당이다. 물론 배후 지휘는 DJ 몫이다. 말썽 많고 괘씸한 당내 쇄신파(DJ가 보기엔 반란군)들에게 민주당 간판을 불하(?)하고 신당을 만드는 승부수다.
이와 관련해 야당의 한 중진이 던진 말은 음미해 봄직하다. "DJ가 누구요? 호락호락 반란파들에게 당권을 넘겨줄 것 같아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과거 평민당을 버리고 훌쩍 영국 유학을 떠나더니 어느 날 불현듯 돌아와 국민회의를 눈 깜짝할 사이에 급조한 사람 아니요?"
아닌게 아니라 DJ는 호남이라는 지원세력이 있는 한 마음만 먹으면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 자금력에서도 그를 따를 현직 정치인은 없다.
정치권이 물밑에서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외곽으로 밀려난 JP는 YS와의 연합을 탐색 중이다. 3김 대연합을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DJ에 대한 나머지 양김의 심적 앙금이 생각보다 두껍다. 또한 이들이 구상 중인 ‘영남 후보론’은 기본적으로 DJ와 이회창을 물 먹이는 전략이다.
이상의 변수들을 묶어 단순 배열을 한다면 이런 도식이 나온다. 야당의 확고한 후보인 이회창, 민주당의 경선 승리후보, JP-YS 연합의 영남 후보- 아주 평탄한 3자 각축의 1차 구도다. 난이도가 높은 제 2안은 민주당이 깨지는 경우인데, 이인제가 튀어 나가고 쇄신파가 별도 후보를 낸다면 4파전이 된다.
여기에 최대의 변수인 DJ 신당이 가시화될 경우 필경 또 다른 후보, 아마도 호남 정권을 이을 순종 호남 후보가 각축전에 뛰어드는 대혼전이 예상된다. 선거 귀재라고도 불려온 DJ는 속으로 주판알을 굴리고 있을지 모른다. "JP-YS측 영남 후보와 이인제 그리고 민주당 쇄신파를 대표하는 진보 성향의 후보가 이회창 표를 잠식하는 반면 호남 표를 일사분란 거머쥔다면 승산은 있다!"
어떤 경우든 이회창은 불리할까. 물론 마음 편한 싸움은 아니다. 연합 공세에 노출돼 융단 공격을 받을 공산이 큰 때문이다. 그러나 이회창 진영은 자신하는 구석이 있다. 3김의 재등장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YS는 IMF로 나락에 떨어졌고, DJ의 정치력도 한계를 보였으며, DJ품을 벗어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JP에게도 실망한 게 국민감정 아니냐고 자위한다.
3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 자칭 정치 9단들이다. 죽기살기로 이회창을 덤프시켜야겠다면 못할 게 없는 그들이다. 3김 연합이라는 표면적 유대는 어렵다하더라도 또 밀실에 모여 모종 쿠킹을 할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우리는 또 어리석은 국민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난 국회의원 보선에서 민초들의 노성을 듣지 않았는가. 시대는 한참 변했다. "금 나와라 뚝딱 하고" 정당을 급조하고 "구국의 일념 운운"하고 나서면 "우리가 남인가"하고 부산·대전·광주 등에서 표를 몰아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아니 이젠 그 고향타령은 끝장내야 한다. 이 점을 3김씨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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