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백 순 <민주평통 자문의원, 미국노동성 선임경제학자>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구룡폭포를 향해 오르는 길목에서 북한 여성순찰원(안내원)이 건내는 말이었다. 잔잔한 억양에 당돌한 듯한 북한 사투리가 섞여 이국적인 내음을 풍겨 오히려 매력적이었고, 단풍이 좀 진듯한 늦가을 날이었지만 흰 구름이 곁든 푸른하늘에 펼쳐진 기암절벽 풍악산의 자태는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11월 초 2박3일의 일정으로 금강산을 관광하게 된 것은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회장 김영진외 26명)와 자매관계를 맺은 한국 광주광역시남구협의회(회장 김규룡외 21명)가 공동으로 오랫동안 기획한 결과이었다. 쌀쌀한 듯한 늦가을 아침 우리일행 49명을 포함하여 남한 각지에서 온 600여명의 금강산 관광객들이 설악산 울산봉을 뒤로 하며 설봉호에 몸을 싣고 동해의 푸른 물을 해쳐 속초항을 떠나 북행길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싸늘한 바다바람을 맞으며 멀리 동해안 산악을 바라보는 가운데 군사분계선을 지나간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4시간여의 항해를 마치고 장진항에 도착하여 같은 민족이면서 엄연히 이국인 북한에 들어 가는 입국수속을 마치고 [현대]가 마련한 해상호텔인 해금강에 여장을 푸니 짧은 늦가을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커텐을 여니 석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금강산 1만2천봉이 비록 높다랗게 드리운 철조망속에서 바라 보는 자태이었지만 한반도의 명산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여겨졌다. 금번 금강산을 관광하면서 몇가지 관찰한 것들이 나의 감회를 새롭게 해 주었다.
첫째, 금강산은 미국의 록키산맥의 풍광같이 웅장하지는 아니하지만 극히 동양적인, 아니 극히 한국적인 모양새를 간직하고 있다. 제2일 아침일찌기 양옆으로 철조망이 처져 있는 차도를 버스로 얼바쯤 간후에 조별로 등산 길에 올랐다. 선녀의 비단옷빛같은 옥색의 옥류동계곡 물을 맨손에 담아 마시니 미국에서부터 쌓였던 피로가 일순간에 풀리는 듯했다.
마지막날 참관한 해금강은 비록 해금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총석정을 금지구역이라 보지는 못하였지만 바다 수면에 돌출된 각양각의 돌모양과 그 돌에 부딪치는 하얀 파도 물거품으로 인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더욱이 해금강 한쪽 바위끝에 올라 멀리 남쪽의 통일전망대를 바라 보면서 분단의 한을 달래 보기도 하였다.
둘째, 금번 금강산을 관광하면서 북한동포와 만날 기회가 3번 있었다. 구룡폭포와 해금강을 구경하면서 군데 군데 안내하고 있는 북한 순찰원들과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고 다른 관광객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들의 모습은 친절했고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지만 그들이 차근차근 얘기하는 사회주의의 우수성과 최후승리에 대한 확신은 매우 논리적(?)이기 까지 하였다. 특히 북한 여성의 모습은 서울의 거리에서 흔히 맞부디치는 여자들의 진한 현대식 화장기가 없어서 조선여성의 담백하면서 끈질긴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로 접했던 북한동포는 교예단 공연에서 였다.
세 번째로, 만났다고 하기 보다는 멀리서 바라 보았던 북한동포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철조망사이로 관망하게 되었던 온정리마을의 주민들이었다. 버스 십여대가 북한 안내차량의 인도로 해금강을 향하여 새로 건립된 관광전용(?) 철조망길을 먼지를 풍기며 달리는 도로변에 북한주민들이 높게 쌓은 곡식단과 배추더미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지금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광경은 북한 주민들이 버스창밖으로 손흔드는 우리들을 대하면서 곡신단과 배추더미뒤로 가끔 손을 흔드는 경우도 있지만 머리를 땅에 대고 숨는 것이었다. 50년만에 남한동포와 만나는 반가움이 너무나 커서 부끄러워 외면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초라한 것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아니 해서인가? 아니면 같은 동포이어서 반갑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에 물든 남한동포가 보기가 싫은 것인가? 2박3일의 짧은 금강산관광을 마치고 타고 갔던 설봉호로 속초항에 도착한 것은 늦가을의 해가 설악산봉을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무렵이었다.
민주평통 광주광역시남구 김규룡회장이 마련해 준 푸짐한 해산물 만찬을 말 그대로 숨이 차도록 만끽하고 철책이 들여져 있는 바다가에서 어둠이 깔린 북쪽 금강산 하늘을 바라 보며 기념촬영을 하였다. 높다랗게 떠있는 초생달과 별들이 싸늘한 바다바람에 떨고 있는 모습속에 곡식단과 배추더미뒤에 숨어 손 흔들었던 온정리 마을의 주민들이 자꾸만 자꾸만 떠 올라 혼자 가슴안에 눈물을 머금으며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