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수호 천사의 존재를 믿고 있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요정이 은빛 가루를 반짝이며 나지막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지. 언젠가는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무도회에 당신을 초대하리라 꿈꾸는가. 우리를 꿈꾸게 하는 동화적 상상은 올랐다 내렸다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주가처럼 부질없는 꿈과는 다르다. 꿈꾸는 자는 아름답다. 그리고 꿈꾸는 자는 행복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꿈꾸게 하는가.
이웃에 살면서 친척보다 가까운 한석중씨와 이장규씨는 주말 나들이도 함께 할 때가 많다. 설희와 브렌다, 은우와 지우가 부모들만큼 가깝게 오누이처럼 지내 주는 것이 고맙다. 어릴 적 읽었던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에 간직하고 사는 꿈꾸는 어른, 이경아씨의 제의로 오늘 두 가족은 라치몬트 빌리지의 셰발리어 서점 (Chebalier’s Books)에서 주말 오전에 마련되고 있는 북 리딩 이벤트에 참여를 했다.
영화 ‘You’ve Got Mail’에서 맥 라이언이 운영하던 소규모 아동 도서 전문 서점, ‘The Shop Around the Corner’처럼 작고 정겨운 이 서점에서는 벌써 12년째 주말 오전마다 북 리딩 행사가 마련되고 있다.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추고 있는 Barnes & Nobles, Borders와 같은 대형 서점들 때문에 LA 지역의 작은 서점들은 거반 다 문을 닫은 지 오래인데 콩알만한 셰발리에 서점이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행콕팍 주민들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한 주인의 감각과 영화사가 가깝다는 것이 큰 이유가 된다. 어릴 때 이곳에 와서 동화를 듣던 어린이들이 이제 어른이 돼,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찾곤 하는 셰발리에 서점은 비록 작기는 하지만 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마을의 보석 같은 장소이다.
오전 10시 30분. 소꿉장난처럼 작은 의자들이 어린이들을 기다리는 어린이 서적 코너. 벌써 일찌감치 와서 자리를 잡고 있는 기저귀 찬 스테파니의 표정이 사랑스럽다. 젖꼭지를 물고 다니며 반장 노릇 하는 애쉴리를 그녀의 아빠는 굳이 말리지 않는다. 설희, 브렌다, 진우, 은우도 부모님과 함께 꼬마 의자에 앉아 이야기 할머니가 얘기 보따리 풀기를 기다린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아주 예쁜 공주가 살고 있었어요." 어쩜 옛날 이야기는 한국의 것이든, 외국의 것이든 한결같이 이런 문구로 시작하는 걸까. 북 리딩을 처음 시작해 10여 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지켜온 바브라 수 그랜트 (Barbara Sue Grant)가 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표정도 다양하게 읽어주는 옛날 얘기를 자녀들과 함께 듣고 있던 한애란씨는 겨울밤, 옛날 얘기를 들려주셨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잠깐 마음이 한국의 겨울밤으로 다녀온 틈에 바브라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낸다. 어느 새, 이야기는 마녀가 독이 든 사과를 들고 백설 공주를 찾아오는 대목까지 진전이 된 것 같다.
클래식 동화, 백설공주에 이어 바브라가 들려준 이야기는 ‘셜리 윌리암슨이라 불리는 사자’ 이야기. "사자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줄까요?"라고 바브라가 묻자 어린이들은 통일되지 않아 더 아름다운 제각각의 목소리를 드높인다.
바브라가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까지 30분 동안 읽어주는 책은 대략 2-4권 정도. 18개월부터 5-6세의 어린이들이 주로 오지만 어릴 적 이 리딩 클래스를 다녔던 형과 오빠가 동생들의 손을 잡고 와서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제 앞가림도 못하던 꼬마들이 동생들을 데리고 온 모습을 보면 그녀는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북 리딩 시간이 끝났는데도 네 어린이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른다. 평소에 자녀들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서일까. 설희, 브렌다, 은우, 지우 모두 책읽기를 퍽이나 좋아한다. 특히 은우는 누가 사내 아이 아니랄까봐 공룡에 관한 두툼한 책을 하나 찾아내더니, 사달라고 아버지를 조른다. 한 번 갖고 놀다 버릴 장난감도 아닌, 영혼에의 투자인 책 구입이니 만큼 이장규씨도 망설일 것 없이 아들의 부탁을 들어준다. 설희는 ‘아기 사슴 밤비’의 귀여운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지우는 학습용 그림책을 들었다 놨다 하며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한애란씨와 이경아씨는 옆방의 진열대에서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요리 책을 들춰보며 오늘 저녁 어떤 요리로 파티를 할까를 계획했다. 이장규씨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을, 한석중씨는 언젠가 떠날 호주 여행에 관한 책장을 넘기면서 독서의 계절, 가을 주말 오전이 가져다준 정신적 풍요로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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