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열렸던 건축가 Frank O. Gerhy의 특별초대 건축전은 그 뮤지엄을 설계했던 Frank Lloyd Wright와 애숭이 건축학도였던 36년 전에 본 영화장면들을 떠올리게 했다.
게리 쿠퍼가 건축가로 열연한 ‘건축가의 생애’(한국명) 원명은 Skyscrapper(마천루)로 기억된다. 물질과 출세주의가 만연한 현실세계의 역겨움과 모순에 저항하는 재능과 비전을 가진 한 건축가가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낮에는 채석장에서 노동일을 하며 밤에는 세상의 벽에 부딪쳐 빛을 보지 못한 그의 작품을 다듬으며 건축에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던 어느 날 채석장 앞에서 승마를 하다 낙마한 미모의 여인 - 당대 재벌이요 영향력 있는 신문사 사주(社主)의 딸 -을 도와주게 되고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재능과 지조(志操)를 겸비한 아까운 예술가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녀는 아버지에게 그를 소개하게 되고 신문사 새 사옥의 설계를 의뢰받게 된다. 예상대로 그의 작품은 혹평과 야유 섞인 비판을 받게 되고 그 사옥의 설계에 눈독을 들여오던 다른 건축가들도 대주주들과 합세하여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결국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사장의 권한으로 그의 안(案)이 채택되고 “설계 변경은 절대 불가”라는 약속과 함께 계약은 체결되고 착공을 보게 되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시공되는 것은 확인한 그는 한밤중에 지상으로 조금 얼굴을 내민 그 건물을 폭파시킨다. 그 일로 인해 내외부의 압력을 극복치 못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 사무실에서 권총자살을 한다.
법정과정을 거쳐 사건이 수습되고 원안(原案)대로 골조가 다 끝날 무렵 그는 사고로 현장 가설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하여 목숨을 잃는다. 그녀는 절규한다. 이러한 희생과 진통을 딛고 그의 첫 작품이 세상에 위용을 드러내며 빛을 보게 된다.
비로소 사람들은 기존 건축개념의 고정관념에 빠졌던 자신들을 뉘우치고 비젼을 가지고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건축문화의 새로운 장(場)을 연 그를 극찬하며 신문들마다 대서특필로 그의 생애와 유작들을 소개하여 그의 사후(死後)에 빛을 보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로서 젊은시절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그 후 나의 건축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주었다.
그러나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세상의 인심과 건축풍토는 여전히 척박해서 건축가들을 고독케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목적지에 닿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Frank Lloyd Wright의 체취를 느끼며 전시장에 들어섰다. Gerhy의 대담한 작품을 보며 시간 가는줄 몰랐다.
LA의 것과 스페인 Bibbao의 것 그리고 이번에 선보이는 맨하탄 다운타운의 또 하나의 구겐하임까지 합하면 세번째의 설계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 행운의 뒷면에는 남다른 노력과 설득과 투쟁이 있었겠으나 운(運)도 따라야되기 때문이다. 생전에 이런 영광을 누리는 그의 지난 인생이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유리와 철과 타이타늄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자재로서 자못 오만스럽기까지 한 그의 작품은 초기 작품 보다 대담해져서 그의 조형예술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런 작품들의 기술적 현실화에는 컴퓨터와 과학의 발전이 큰 몫을 했다.
건축정신의 이데아의 고뇌자인 나. 지금은 건축이란 얼어붙은 땅에서 동냥질하는 것이 못내 서글퍼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건축의 이방인이 된 나. 그런 현실세계를 극복하고 우뚝 선 Gerhy에게 박수를 보냈다. 학창시절 그 영화가 나에게 도전과 꿈을 심어주었듯이 그는 분명 이 시대 건축의 파이오니어로서 젊은 건축가 지망생들의 새로운 영웅이 되었다. 이런 건축가를 탄생시킨 미국은 역시 미국이다.
“건축은 이런 것이다. 이럴 수도 있다”며 내 대신 그가 대중을 향해 소리쳐 주고 있음에 그가 고맙고 대리만족까지 느꼈음은 나만의 감회였을까. 동병상련이라. 건축가의 고뇌는 건축가가 안다. 이젠 좋은 건물을 남겨야겠다는 욕망에서도 벗어났고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며 지어진다는 것과 무관한 그런 건축을 사랑하며 오늘도 종이 위에서 기쁨을 누려볼 수 있게 되었다. 모처럼 시원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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