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토빌 인근 캐혼밸리 한인 전원농장을 찾아서
한인타운에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빅토빌 인근 캐혼 밸리(Cajon Valley)는 모하비 사막과 샌버나디노 산맥이 만나는 특수한 지역이다. 겉보기에는 황폐한 사막과 돌산들이 줄지어 있어 ‘죽음의 계곡’을 연상시키지만 지하수가 풍부하고 사철이 뚜렷해 배 등 과수를 재배하는 농장으로 최적인 곳이기도 하다. 스키장으로 유명한 ‘마운트 하이’ 산마루 지역으로 해발 4,000피트가 넘어 여름밤에는 춥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곳의 ‘쓸모 없는 땅’을 부지런한 한인들이 가꾸면서 전원농장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자갈밭이었던 땅에는 수천 그루의 배, 대추나무들이 줄을 서고 있으며 모래 먼지만 회오리바람처럼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던 대지에는 분수와 어린이 놀이터 그리고 운치 있는 정자가 들어섰다. 멧돼지와 흑염소 오리들은이 한가롭게 먹이를 즐기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 10여가구에 불과했던 이 지역 한인들이 이제는 70여가구에 이르고 있는데 복잡한 도시를 떠나 공기 맑고 조용한 곳을 찾는 주말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수확의 계절을 맞아 머리통 만한 배들이 주렁주렁 열린 캐혼 밸리 전원농장들에서 농부의 마음을 접하고 돌아왔다.
캐혼 밸리의 한인들은 대부분 은퇴 노인층. 자연을 찾아 이 곳에 왔는데 친지들이 농장을 소문내면서 방문객이 늘어나게 됐으며 자연스럽게 손님을 받는 전원농장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밭에서 따온 야채를 멧돼지 고기와 상에 올려놓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제는 일부 농장들의 경우 단체 손님이 투숙할 수 있는 민박시설과 가라오케까지 갖추고 있다. 인공위성으로 24시간 한국방송까지 시청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약간 정리가 덜된 리조트 분위기까지 느낄 수 있다. 대부분 농장은 작은 동물원을 방불케 한다. 말, 소, 닭, 염소는 물론 도심에선 보기 힘든 꿩, 청동오리, 공작새들도 사육되고 있어 아이들이 즐거워 한다.
지금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농장은 탐스러운 배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려 있는 천스 신고배 과수원(760-249-6500). 주위의 다른 농장들이 사과, 배, 대추 등 여러 가지 과일을 재배하는데 비해 오직 배만을 고집하는 천종철씨(65)는 파라과이 봉제 이민자 출신으로 지난 95년 노년을 앞두고 캐혼 밸리로 들어왔다. 배는 겨울잠을 많이 자야 하는데 이곳은 12월만 되면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수북하게 하얀 눈이 농장을 둘러싼다고 한다. 한국의 먹굴배와 같은 종류인 신고배를 5년 전에 심어 2년 전부터 수확하기 시작하면서 그 맛이 입과 입으로 전해져 광고 한 번 안 냈는데도 요즘 주말이면 200여명의 인파가 배를 구입하기 위해 이 곳에 몰려든다. 천씨는 10에이커의 농장에 800주의 배나무를 키우고 있는데 크게는 한개 무게가 2파운드에 가까운 대형 배가 밸리의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다.
천씨는 자신의 농장에 ‘천국’이 있다고 자부한다. 그는 돼지, 토끼, 닭, 오리가 한 우리에서 싸우지 않고 잘 지낸다며 "사람들도 너무 욕심내지 않고 살다 보면 이런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산 교육장인 셈"이라고 말한다. 파라과이에서 한인 축구회장을 지냈을 만큼 운동에 관심이 많은데 최근 수준급 테니스 코트를 농장에 만들었다. 탁구대도 있어 방문객들이 농장을 둘러본 후 가볍게 운동도 즐길 수 있다. 천씨는 사는 집을 제외한 건축물 모두 혼자 지을 정도로 솜씨가 좋다. 프로가 지은 것처럼 보이는 분수대 정자 등이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가라오케 시설을 갖춘 단체 객실은 앞으로 1달간 주말 예약이 모두 완료된 상태다. 이 곳은 민박도 하는데 가격은 1인당 10달러로 저렴한 편. 취사시설이 완벽해 가족이 민박을 하면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40여개의 피크닉 테이블도 있어 음식을 준비해 하루 나들이하기에도 적합하다. "굳이 배를 구입하지 않아도 누구든 지나다 들르면 시원한 지하수,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언제든지 대접하겠다"는 부인 천부자씨의 말에서 이름과 걸맞는 넉넉함이 엿보였다. 천씨가 생산하는 배는 12개들이 박스 당 20달러이다.
천스과수원 맞은편에 있는 베델 농장(760-249-8867)의 정병호씨(63)는 자칭 ‘양봉 9단’이다. 대구 삼육고교 1학년 때부터 47년 동안 양봉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 곳 캐혼 밸리에서도 7년째 벌꿀을 소득하고 있다. 벌집 옆에 대추나무 600주를 심어 봄에는 벌들에게 대추 꽃을 대주고 있으며 가을에서 대추를 수확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양봉을 직접해 질 좋은 벌꿀을 생산하다 보니 한인들은 물론이고 미국인까지도 고객이 됐다"는 정씨는 "어떤 농사든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개척한다는 마음이 앞서야 성공한다"며 농사를 시작하려는 한인들에 대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정씨가 생산하는 야생 꿀은 1갤런당 25달러선이며 생대추는 파운드당 3달러, 마른 대추는 6달러를 받는다. 여름에는 자신의 농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공해 수박과 참외를 대접하고 손님이 원하면 토종닭을 30달러에 잡아준다.
◆캐혼 밸리의 농장 식당들
깨끗한 분위기의 대관령(760-249-0022)은 초자연 속에 자리잡은 산장 식당이다. 청둥오리, 야생 멧돼지, 토종닭, 흑염소 등의 메뉴가 있는데 특히 중풍 및 각종 질병 치료에 좋은 오리요리에 자신이 있다고 한다. 20에이커의 넓은 농장은 800피트 지하의 암반수를 사용하고 있다.
큰돌산장(760-868-2611)의 김조자씨(59)는 10년 넘게 요식업에 종사했다. 몸에 좋다는 신선초를 주재료로 흑염소 전골과 백숙 도리탕의 메뉴를 내놓고 있다. 해물파전도 일미라고. 김씨는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한다. 면적은 총 10에이커에 식당과 함께 운영하는 라운지에는 150명 이상이 칵테일 가라오케를 즐길 수 있어 가족이나 동창회 모임을 하는데 좋다고 한다.
구름이 머무는 곳(760-868-5047)은 이 지역 한인 식당과 농장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배기찬씨(62)가 지난 92년 이 곳에 한인으로서는 처음 정착해 식당 문을 열었다. 이 곳은 주문식단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염소 멧돼지 토끼 오리 꿩 등을 소금구이, 불고기, 바비큐 등 요리해 달라는 대로 해준다. 흑염소 농축도 해주는데 고객의 체질을 고려해 십전대보탕, 사물탕, 팔미탕 등으로 조제해 준다.
◆가는 길
10번 이스트를 타고 가다가 라스베가스로 빠지는 15번 노스로 갈아탄다. 여기서 15마일을 더가면 215번 프리웨이와 갈라지는데 15번 노스로 직진, 7마일만 더 가면 왼쪽으로 76주유소 사인판이 보이면서 138번이 나오면 내린다. 138번 서쪽으로 4마일 정도 가면 베델 농장을 시작으로 한인 농장과 식당들의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LA에서 80마일 정도.
◆캐혼 밸리에서 농장을 시작하려면
이 곳 부동산 가격은 최근 4∼5년간 크게 올랐다. 부동산 시장에 나오는 캐혼 밸리 농장은 2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기존 주택에 상가가 딸린 것이고 두 번째는 부동산만을 구입하는 것이다. 5에이커 대지에 2,500스퀘어피트의 주거지와 레스토랑 등 현존하는 비즈니스가 있는 경우 현 시세는 60만달러 정도이며 구입시 20만달러 정도 다운페이를 해야 한다. 같은 조건으로 부동산만 구입할 경우에는 시세가 40만달러 정도이며 다운페이는 10만달러 이상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부동산에는 식물원 시설과 과수원 부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대지만을 구입할 경우에는 에이커당 8,000달러에서 1만2,000달러까지 다양하다. 특히 농장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하수의 깊이에 따라 대지의 가격이 크게 변동한다. 벨델 농장의 정병호씨는 "투자도 자신의 노력과 더불어 서서히 해야 하며, 또 농사지어서 큰돈 벌었다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루선밸리(Lucerne Valley) 손농장
시골풍경이 물씬 풍겨 나는 한적한 농장에서 식구들과 고향을 대신할 수 있는 곳. 풍성한 과일과 넉넉한 인심 속에 시골풍경이 수채화처럼 묻어나는 손씨 부부가 운영하는 루선벨리 손농장에 가면 가을 풀벌레 소리가 은은하게 어디선가 들려오고 들판 대추나무에는 왕방울처럼 알알이 연근 대추가 방문객을 맞고 있다.
한국 대추보다는 서너배 정도는 더 크고 맛있는 손농장의 대추는 기후와 토질 그리고 일조량의 넉넉함으로 얻어지는 결과이다.
농장 주인인 손찬균(60)씨는 과거 한국에서 건축업을 하다가 미국바람이 불어 루선밸리에 들어와 인간 상록수가 되어 보겠다고 시작한 농장이 벌써 10여년 세월을 훌쩍 넘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손씨는 수석 수집가로 수십년 모아온 수많은 수석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안주인 손은옥씨는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으로 목소리가 아름답고 음식솜씨 또한 일품이다. 농장에는 오골계 흑염소 멧돼지 타조구이 등 흔히 LA에서 접할 수 없는 별미를 내놓고 있다. 루센밸리에는 10여가구의 한인들이 작은 부락을 이루며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농장이나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웃 애플밸리 주민들과 모여 빅토밸리 한인회가 조직되어 있다.
가는 길은 LA에서 10번 이스트를 타고 15번 노스로 갈아탄다. 빅토빌에 도달하면 베어 밸리 로드(Bear Valley Rd.)에서 내려 우회전 동쪽으로 12마일 정도 가면 18번 하이웨이가 나오고 18번 이스트를 타고 10마일을 더 가면 루선밸리가 나온다. 247번 올드 우먼 스프링 로드(Old Woman Spring Rd.)로 길 이름이 바뀌고 이 길로 2.6마일 가다 미드웨이 로드(Midway Rd.)가 나오면 좌회전 3마일 정도 북쪽으로 가면 농장에 도달하게 된다. 가는 길이 어려우니 방문하기 전에 꼭 전화를 해야 한다. 주소 및 문의: 35335 Cambria Rd. (760)248-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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