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로서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제자 양성이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교수직 처음 몇 년은 내 앞가림에 바빠 학생들의 재능을 발굴하여 개발하여 주는 제자 양성은 듣기 좋은 속담과 같았다. 종신재직과 승진을 앞에 두고 긴장 속에서 동분서주하느라 제자를 보살피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요즈음도 가끔 손님으로 초청되어가서 듣는 소리가 편안하게 앉으라는 말이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담고 앉지 못하고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친 채 긴장된 자세로 앉아있는 버릇이 지금도 남아 있어 상대를 불안하게 하나보다.
방학동안에도 가족들과 마음놓고 놀지 못하고 항상 논문 마감이다 수업준비다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사는 나를 보고 막내 동생은 언니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느냐고 동정하며 위로하기도 한다.
한번 사는 세상 그렇게 살지 말고 자기가 하는 가게에 와서 장사를 하면서 재미있게 살자고 권고하기도 한다. 수년을 학생으로 찌들은 생활을 하더니 직장을 잡고도 별 볼일 없는 박사부부 딸네 집에 오실 적마다 어머니는 "한국에서는 교수들이 부자로 사는데" 하며 안쓰러워 하시곤 하셨다.
이처럼 교수라는 직종이 재미없고 지리멸렬한 직업일 수도 있다. 교육과 명예를 중요시 여기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교수직이 괜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성공의 잣대가 월급봉투의 두께로 측정되는 미국에서는 별로 인기 직종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군다나 대학을 졸업한 후 평균 7년을 더 공부한 후에야 박사학위를 얻고, 그렇다고 공부가 끝난 후에 교수자리가 보장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교수가 되겠다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는 대학 교수를 양성하기 위한 장학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학구열이 강한 대학원 학생들에게 대학 선생이 되라고 권장하고 있다. 주임교수가 유망한 학생을 멘터링하며 교수가 되는 길을 안내하여주는 장학 프로그램이다.
지난 금요일 나는 나의 제자 낸시와 함께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였다. 낸시는 필리핀에서 10년 전에 이민 온 한 아이 엄마이며 대학원생이다. 홀 엄마로 아이를 키우면서 독학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학구열이 남다른 나이 든 학생이다.
모임에 스피커로 참석한 스탠포드 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두 여학생의 경험담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멕시코계 여학생은 어렸을 적에 이 농장 저 농장으로 전전하며 일하는 부모를 따라다니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다고 자기를 소개하였다. 자기 집안에서는 자신이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하였다면서, 자신을 키워준 은사의 본을 받아 교수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하였다.
중국계 여학생도 자신의 배경 이야기를 하였다. 대학원을 다니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고. 자신처럼 보통 사람이 유명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것은 자신의 상상 밖의 일이라면서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우연히 만들어진 학자들"이 아니냐고 물었다. 자신을 믿어준 교수를 만났기에, 우연한 기회로 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면서 관심을 가지고 자기를 보살펴준 교수에게 감사하였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미국 교육체제에 감사하였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나의 벽안의 은사를 생각하였다. 이민 초창기 때에 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특수교육 과목을 들으면서 만났던 교수님의 보살핌으로 나 역시 두 여학생들처럼 우연히 만들어진 학자이다.
하루는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과 몇몇 학생들이 이야기하였다. 영어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갑자기 교수님이 나에게 언제 박사학위를 시작하겠는가고 물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말씀을 듣고 어떨떨해하는 나에게 다시 한번 다짐하듯이 물으셨다. "언제 시작할래?" 하고 물으시던 그 말씀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부족한 영어 때문에 석사코스를 염려하고 있었던 나게 교수님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용기를 주었는지 모른다.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의 한마디의 격려가 내 마음속에 꿈나무 씨앗으로 뿌려졌던 것이다. 4년 후에 나는 교육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꿈꾸면서 공부하게 되었다.
자신을 믿어주고 격려하여 준 교수가 자신들의 운명을 바꾸어 주었다는 두 여학생의 말을 들으면서, 나의 운명을 바꾸어준 벽안의 은사를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 제자들을 격려하는데 더욱 더 부지런해질 것을 다짐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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