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전대미문의 테러참사가 미국의 심장부 뉴욕과 워싱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직후 한동안 시카고시내 업타운지역에서 미용재료업소를 운영해 온H씨는 테러여파로 장사가 안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전부터 경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단 몇 분이라도 손님이 아예 들어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테러직후 2-3주동안은 정말로 ‘파리 날린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 업소를 운영한지 십수년만에 이처럼 장사가 안된 적은 없었다는 H씨는 미본토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그 충격의 파장이 큰 것 같다고 전했다.
한인들이 많이 하는 비즈니스 중에 생필품인 관계로 경기의 영향을 그리 받지 않는다는 뷰티업소가 이 정도면 다른 업종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테러가 발생한 동부의 뉴욕은 물론, 서부 LA에 이어 시카고지역의 한인 소매업계와 도매업계, 서비스업계 등 업계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업주 모두가 이번 테러사건과 전쟁의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테러 사건 이전 한인 경제는 전반적인 침체기속에 미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빠르면 올해말이나 내년초쯤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해왔다.
그러나 테러 이후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와 쏟아져나오는 감원 소식, 전쟁 발발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거의 한달동안 30-40% 이상 매출이 감소하는 것을 그냥 눈뜨고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국 군수 경기가 다시 활성화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그때까지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으로 자리잡았다.
▲속타는 한인업주들
남부상가를 포함, 주로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고객을 상대으로 하는 의류와 잡화, 미용재료, 신발, 주얼리 등의 소매업계들은 테러사건이 나기전에도 올해 매상이 지난해에 비해 신통치 않아 심기가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테러까지 터져 장사는 더욱 곤두박질치고 있어 울상이다. 손님자체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매상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남부상가의 일부 한인업소들중에는 매상급감으로 렌트비까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지경에 처한 곳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 이영중 남부상우협회장은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계절적인 요인에다 테러사건의 여파로 경기가 더욱 악화돼 업종별로 큰 차이없이 대부분의 한인업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실상을 전하면서 "나름대로 노하우와 자본력이 있는 업소들은 버틸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업소들은 이러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심각한 지경에 처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미용재료상협회의 홍병길 회장도 "테러직후 한동안 매상이 계속 떨어지다 최근부터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하고 "그러나 이같은 불경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소매상들이 주고객인 무역·도매업체들도 당연히 힘들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시즌 등 시즌 최대 성수기를 앞두고 맞닥뜨린 이번 테러사건으로 경기가 급강하하는 바람에 상당수 소매상들이 물건 주문을 거의 중단한 상태여서 타격이 크다. 로렌스 한인타운에서 잡화도매상을 운영하는 K씨는 "소매업주들이 돈이 있어도 주문을 안하고 있다. 현재는 매상이 격감해도 크리스마스 대목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부분의 도매업체들이 그때까지는 버티면서 기다릴 것으로 예상되나 침체경기가 계속될 경우에는 자금력이 부족한 업소들은 더 이상 못 버틸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소매업계의 침체는 서비스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도소매 업체들이 장사가 잘돼야 그 돈이 한인타운에 돌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인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 술집 등 유흥업소, 식품점을 비롯 여행, 관광, 선물업종 등도 장사가 예전에 비해 너무 안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전하고 있다. 특히 테러이후 가장 타격을 받은 서비스업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여행업이다.
항공여행 기피현상으로 미전역에서 여행객들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시카고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부 여행·관광업체의 경우 매출이 많게는 70-80%까지 감소한 곳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통적인 컨벤션 도시인 시카고는 매년 각종 비즈니스 행사 참석차 한국에서 오는 방문객들이 꽤 있는데 테러사건에 이어 탄저병까지 확산되는 실정을 알고 미리 예약한 행사 참석도 취소하는 예가 부지기수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식당, 선물점 등도 자연히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타지역에서의 관광객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여서 그나마 숨통이 다소 트이는 상태로 전해졌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서비스업종인 세탁업계도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에 따른 직장인 감소, 각종 행사 자제 분위기 등으로 세탁물 주문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속수무책, ‘빨리 끝나기만 학수고대’
백인들을 상대로 하는 업종도 처지는 비슷하다. 성조기, 꽃 등 일부 ‘테러특수’ 품목을 제외하곤 장사가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테러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탄저병 테러 위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겨냥한 테러와의 전쟁까지 벌어진 이 불안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의 구매심리탓이다. 부시 대통령과 데일리 시카고 시장 등 정치지도자들이 미국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주민들이 샤핑도 하는 등 테러이전의 평상시 생활로 빨리 복귀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입장에선 예전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별다른 대책 마련도 요원한 한인업주들은 시간이 빨리 지나서 테러사건이후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경기가 하루속히 끝나고 소비 심리가 다시 회복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dhlee5@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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