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아이크." 트루먼 대통령이 자신의 후임자로 아이젠하워가 결정되자 한 말이라고 한다. 군 출신이 정치에 대해 뭘 알까 하는 데에서 나온 빈정거림이다.
트루먼은 헛 짚었다. 2차 대전시 유럽전선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처칠, 몽고메리, 드골 등 보통 까다롭지 않은 인물들과 보통 잦은 접촉을 해온 그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젠하워는 이미 정치적으로 상당히 숙달돼 있었다.
어떤 직업 출신이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할까. 변호사가 한동안 그 정답으로 돼 있었다. 미국은 법의 수요가 넘치는 나라로 법을 다루는 율사중에 워낙 탁월한 인재가 많이 몰렸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그만큼 많다는 것도 그 증거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시대가 ‘경제 최우선의 시대’인 만큼 최고경영인(CEO) 출신에 일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정부도 기업과 다를 게 없다는 판단에서 대통령을 근본적으로 매니저로 파악, 관리 능력에 무게를 더 두는 경향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공직 사회에는 지금도 통용되는 한가지 룰이 있다. "기업에 투신해 재산을 모은후 공직에 진출해 봉사하라. 그리고 기회가 되면 대권도 바라보아라." 양키 기득권층이 아직도 지키고 있는 일종의 고전적 룰이다. 이에 충실한 전형적 케이스가 부자(父子) 대통령을 탄생 시킨 부시 집안이다.
최고경영인(CEO) 출신은 이런 양키 전통에 충실한 공직자와는 다르다. 평생을 기업에서 지내오다 싶이 한 게 CEO여서 엄밀한 의미에서 볼때 미국식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에 치국(治國)의 정코스를 받아온 공직자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CEO 시대’인 만큼 개념이 모호해졌다. 최근 20년간 미국 경제가 그 어느때 보다 눈부신 발전을 해온 탓이다. 다우존스지수가 열배 가까이 오른건 분명히 CEO들의 공로다.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게 CEO 신화다. 동시에함께 최고경영인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될 때 더 유능한 정부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허버트 후버는 경영에 가장 밝은 대통령으로 꼽힌다. 현대적 의미의 CEO 출신으로 불릴 정도다. 그러나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 대공황 앞에서 두손을 든 것. 찰스 윌슨은 GM사 회장출신으로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무능 장관으로 낙인 찍혔다. 존슨 행정부의 로버트 맥나마라도 CEO출신이다. 그는 월남전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현 부시 행정부의 럼스펠드 국방, 오닐 재무 등도 모두 CEO출신이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은 시기상조. 그렇지만 "글쎄…"정도의 평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CEO 신화’는 그야 말로 신화(myth)일 뿐, ‘기업 경영에 뛰어나다고 국정 수행에도 뛰어난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기업 경영과 국정 수행은 별개 사항이라는 것이다.
각설(却說)하고-.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자. 어떤 직업 출신이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가, 아니 적합했나. 한국의 대통령은 몇 안된다. 변호사도, CEO 출신도 없다. 오직 두 종류 직업 출신 뿐이다. 직업 군인과 직업 민주화 운동가 출신이다.
그러니 ‘군 출신과 민주투사 출신’의 단순 비교 밖에 할 수 없다. 그 비교가 그런데 도대체 우습기 작이 없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다. YS의 문민정부가 대실패로 끝났다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다. "아직은…"이라는 미련이 붙은 단서를 전제로 깔고 하는 이야기지만 DJ의 국민 정부도 말씀이 아니다. 한 술 더 떠 총체적 실패로 끝날 태세여서 하는 말이다.
거기다가 들리는 이야기로는 박정희시대는 ‘요순(堯舜)시절’로 불린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도 새롭게 평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계산서는 볼 것도 없다.
그런데 그로 끝나는 것일까. 말하자면 어거지 3류 쇼, 배우들의 독백마저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지겨운 쇼를 또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는 푸념 정도로 끝날까. 아닐 것이다. 군사독재정권만도 못한 문민정권들. 그 다음에 닥쳐오는 것은 뭘까. 민주화에 대한 전반적 허무주의다. 문제는 허무주의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맹렬한 분노를 줄곧 수반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왜 경영의 귀재라는 CEO들이 국정 수행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리더십은 명령에 의해 나오는 게 아니다. 동의의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점을 CEO 출신들은 자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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