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저화제
▶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진정한 미국 경험의 창
지난 9월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참사는 미국내 운수산업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왔다. 항공여행에 대한 신뢰도가 감소한 반면, 철도나 시외버스 같은 육상 교통 수단에 대한 신뢰도는 전례 없이 높아졌다.
테러공격이 발생한 직후 한동안은 ‘도로 교통의 전사’라고 불리는 그레이하운드가 항공산업 대역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레이하운드는 2,700여대의 고속버스와 5,000여명에 달하는 운전기사들을 풀 가동시키는 특수를 만끽했다. 테러공격 이후 첫 나흘 동안 북아메리카에서는 그레이하운드를 이용한 승객이 50% 이상 증가했다. 그레이하운드는 연간 2,500만명의 승객을 운송하고 있다.
그레이하운드 특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좀더 두고 볼일이다.
무엇보다 장거리 여행자들이 항공 교통의 신속함과 편리함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공격 이후 항공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일구간에서 3시간의 항공여행과 3일의 버스여행 중 하나를 택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 없이 항공여행을 선택할 것이다.
자기 차가 있는 사람들은 드라이브 일정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자가용 운전을 선호할 것이다. 그레이하운드는 여행 도중 이름도 없는 시골 정거장에 정차하고, 어수선한 버스 터미널에서 대기하는 시간들이 많다.
미국의 진정한 참 맛을 느끼기 원한다면 그레이하운드 여행이 제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레이하운드의 주요 승객층은 항공여행을 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 손수 장거리 운전을 하기 힘든 노약자들이 주종을 이룬다. 객지에서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 노약자들, 블루칼러 노동자들, 환경이 불우한 싱글 엄마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레이하운드 여행에서는 항공기나 기차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이색적인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특히 장거리 여행일 경우, 승객들은 박스 같은 버스 안에서 낮선 승객과 어깨를 비비며 잠을 자고, 그들이 풍기는 냄새를 고스란히 맡아야 한다. 때로는 음식을 함께 먹고,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레이하운드 여행이야말로 가장 민주적 교통수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레이하운드에는 우선 일등석이나 이등석 같은 구분이 없다. 좌석은 철저하게 먼저 도착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다. 만일 버스의 정원이 초과되면, 다음 버스가 와서 나머지 사람을 수용한다.
지난 수년 간 그레이하운드의 승차 규정은 계속 강화되었다.
오늘날 그레이하운드는 차내 흡연이나 음주를 일체 허용치 않는다. 이 규정을 어기는 승객은 승차권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26세의 안드레 화이트로는 그레이하운드 단골이다. 그는 지금까지 음주나 흡연 때문에 쫓겨나는 승객은 못 봤지만, 다른 말썽 때문에 승차 거부당하는 손님은 보았다고 전한다.
화이트로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거주지인 콜로라도주 덴버까지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귀가 중이다. 출발지에서 피츠버그에 도달하는 데만 벌써 22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그는 뜻이 맞는 승객들끼리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전혀 지겨운 기색이 없다.
대부분의 승객들에게 그레이하운드 경험은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목적지 도달이라는 지상 명제와 더 가깝다.
81세의 할머니 위어리 클라라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더햄에서 오하이오주 캔턴까지 20시간의 버스 여행길에 올랐다. 클라라는 어린아이들 보채는 소리 때문에 밤에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그녀는 또 "그레이하운드 여행의 가장 큰 불편함은 옷을 갈아입을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40세의 앤소니 피츠제럴드는 피츠버그에서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라스베가스까지 52시간의 버스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옆 좌석 사람에게 초콜릿과 스낵을 권하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청한다. 그의 앞자리에는 31세의 독신모 패트리샤 바스케즈가 세 명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앉아 있다.
바스케즈는 최근 점원직에서 해고당한 후, 희망 없는 피츠버그 철강타운을 탈출하여 서부로 가는 중이다. 그녀는 피츠버그에서 애리조나까지 애들 세 명을 포함, 그레이하운드 편도 티켓 4장을 사는데 300달러를 지불했다. 바스케즈는 일주일 후 가방 16개와 함께 친척이 사는 네바다에 도착,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레이하운드 여행에는 하층민들의 삶의 애환이 깊이 베어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오늘날 미국의 대도시들을 축으로 한 버스 운송산업은 대체로 사양길을 걷고 있다. 대도시의 버스 정거장들은 계속 규모가 축소되거나, 터미널 건물의 용도가 전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중에는 운영난을 견디지 못해 폐쇄되는 정거장들도 하나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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