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개정 이민법은 추방을 대폭 강화하는 등 반이민 색채가 매우 짙었다. 96년 개정 이민법은 다분히 93년 월드 트레이드 센터 폭발사건 그리고 96년에 일어난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발사건으로 인한 반이민 무드의 산물이었다.
이 두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대형 참사였던 지난 9월11일 월드 트레이드 센터 폭발사건은 향후 이민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 사건은 공화당 행정부 출범 후 정책기조로 자리를 잡은 친이민 무드에 찬 물을 끼얹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벌써 고단위 반테러 입법을 내놓고 있다. 행정부는 반테러 동원법(Mobilization Against Terror Act)을 입법해 의회에 상정했다. 이 법안은 테러 행위자 등 안보를 위협하는 사람은 재판 없이 곧바로 추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에도 테러범은 일반 추방케이스와 달리 특별한 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추방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행법에서는 테러범이라고 하더라도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법무부 장관이 테러범이라는 것을 확인해 법원에 넘기면, 피소된 사람은 설사 테러범이라고 하더라도 추방재판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변호사를 선임할 여건이 되지 않는 피고인은 정부가 변호사 선임에 대한 경비를 대납해 주었다.
그렇지만 입법을 서두르고 반테러 법안에서는 테러 혐의로 있으면 영주권자라고 하더라도 추방재판을 거치지 않고 추방을 하도록 한 것이다. 테러 혐의자로 보이면 법무부 장관이 이것을 확인하면 바로 추방이 된다. 오직 열려 있는 장치는 워싱턴 DC에 있는 항소법원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 이 법안은 의회가 신속하게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입국의 출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지고 있다. 영주권자라고 해도 입국심사에서 영주권 이외에 다른 신분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이번 테러를 일으킨 범인들은 대부분 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미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한 사람들이었다. 이중 한 사람은 미국에서 체류기간을 넘긴 후에도 재차 미국에 별탈 없이 입국한 사례마저 있었다.
최근 국무부는 해외공관에 훈령을 보내 비이민 비자 심사를 할 때는 지금까지 해 오던 정책을 유지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앞으로 비자심사가 보다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그래서 학생비자(F-1, M-1)나 훈련생(J, H3)비자 발급을 보다 엄격하게 할 전망이다.
한때 통관의례에 불과했던 캐나다 국경지역의 입국 심사도 예전 같지 않게 까다로워졌다. 이민국도 내부 규칙을 바꾸어 이민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을 때 구속의 적부를 24시간 이내에 심사하도록 했던 것을 48시간으로 늘려 잡고 있다.
화불은 단행이라는 말처럼 불황마저 겹쳐 이민에 주름살을 주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불기 시작한 인터넷 열풍을 타고 미국의 하이텍 기업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래서 한동안 이곳 저곳에서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을 쳤다.
우수한 외국동자가 필요한 데 H1-B비자 쿼타로 인위적으로 묶어 놓은 바람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업계의 로비가 거센 물살을 탔다. 그 결과 지난해 말에 H1-B비자 쿼타가 대폭 늘었다. 외국 노동자가 없으면 국제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업계의 로비가 주효한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해 말부터 하이텍 산업의 성장세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신 경제에서 고전적인 경제 사이클을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한낱 허구였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앞다투어 대량 감원을 하는 바람에 실직자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단 늘어난 H1-B 쿼타가 당장 줄어들 리 만무하지만 침체된 경제는 이민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끝으로 경기 좋을 때와 달리 실업률이 늘어나면 자연 힘들어지는 것이 노동확인 과정이다. 노동확인 과정은 미국에 자격을 갖춘 노동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실업이 늘어나는 판국에 미국에 자격을 갖춘 노동자가 없다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노동확인과정의 통과가 좁은 문이 된 것이다.
이런 사회분위기 때문에 당분간 이민 희망자에게 유리한 입법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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