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23편이 암송된다. 예배시간 장면이 아니다. 공중파를 통한 생방송 상황이다. TV앵커가 이 시편 구절을 낭독하면서 청취자에게 읽기를 권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가 있을 것이라는 권면과 함께.
월 스트릿은 ‘매몬’(Mammon)을 주신(主神)으로 모신 곳이다. 이곳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God Bless America’. 뉴욕증권시장이 다시 개장되면서 먼저 이 곡이 연주된 것이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의 커버스토리 제목도 ‘God Bless Amerca’다.
동시다발의 테러사건 발생후 미국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모두 함께 모였다. 그 장소는 백악관도, 의사당도 아니다. 교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4명의 전직 대통령, 3부 요인에서 군장성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지도자들이 처음으로 한데 집결한 곳은 워싱턴의 내셔널 커디드럴. 이곳에서 부시 대통령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평가되는 연설을 했다. 그것은 차라리 설교였다.
교회와 뭐의 분리 원칙이라고 하더라. 하여간 그런 말이 쑥 없어졌다. 공립학교 행사에서 기도행사만 있었다 하면 어김없이 들먹여진 게 바로 이 원칙이고 이 원칙에 따라 소송이 제기되게 마련이었다. 이런 시비가 없어졌다. 테러참사 이후의 현상이다. 대통령에서부터, 의회, 증시개장에서 스포츠행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공적 생활에서 반드시 이뤄지고 있는 게 기도다. 예배다. 이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21세기의 전쟁이 시작됐다." 뉴욕과 워싱턴을 동시에 겨냥해 가해진 파상적 테러공격후 부시 대통령이 내린 선언이다. 이와 함께 ‘21세기 전쟁’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구구하다. "국제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다." "문명사회에 대한 야만인의 공격이다." "신자본주의에 대한 반(反)세계화 세력의 도전이다." "문명 충돌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상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전쟁의 세기’로 불린 20세기의 전쟁은 그 성격 규정이 용이한 편이었다. 뚜렷한 한 흐름으로 일관됐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이 그 테마다. 자유민주주의가 나치즘과 공산주의로 대별되는 전체주의 세력과 세기간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는 게 그러므로 20세기의 일관된 스토리다.
이제 막 시작된 21세기의 전쟁에는 그러면 어떤 정의가 내려질 수 있을까. ‘거대한 영적(靈的) 전쟁’이라는 표현도 가능할 것 같다. 종교의 이름으로 감행된 게 이번 테러이고, 미국이 보이고 있는 대응도 다분히 종교적이어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민간 여객기를 자살테러의 무기로 사용한 테러집단, 그리고 그 옹호세력이 보이고 있는 ‘반문명의 광기’는 바로 비인간화의 극치이고 ‘악마적 범죄’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은 교육을 받을 수 없다. 하이 힐은 물론이고 흰양말 착용도 안된다. 모든 공직에서 여성을 추방해야 한다… 음악도 금지된다. 영화는 물론 안된다… 모든 남성은 수염을 길러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고 내린 포고령이다. 그리고 실제로 직장에서 여성은 모두 쫓겨났다. 중병에 걸린 환자일지라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병원서 쫓겨났다. 버스에서도 끌려 내려진다. 20년 가까운 전화속에 살길이 없어진 수백만의 과부들은 산채로 매장되고 남자들은 전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3위의 하나님 자리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그리고 주체사상을 대입시키고 수백만의 인민을 아사로 몰아가고 있는 수령절대주의의 광기에 싸인 북한과 함께 ‘지구촌 최악의 체제’로 지목된 게 바로 이 탈레반 정권의 아프간이다. 이 탈레반 정권이 테러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 비호세력이다.
이런 악(惡)과 싸우는 전쟁이므로 ‘영적 전쟁’이다. 그 전쟁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류 양심의 전쟁’(War of Conscience)이다. ‘이해에 따른 전쟁’(War of Interest)이 종전의 전쟁 양태라면 21세기의 전쟁은 바로 ‘양심의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
그 전쟁 양상은 그러나 변질될 수도 있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될 때 흔히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이 맹목적 배타주의이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하나의 이슬람교 컬트에 불과한 테러집단이 저지른 범죄헹위다. ‘21세기의 첫 전쟁’이 오도된 종교의 이름으로, 무고한 생명만 희생시키는 양상으로 전쟁이 확산될 때 ‘문명 충돌’의 대파국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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