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5월26일 아침 9시30분, 한국의 정보통신부 장관과 한국통신 사장이 뉴욕증권거래소(NYSE) 개장식에 참석, 주식거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벨을 타종했다. 그로부터 2년쯤 후인 지난 6월28일 저녁 4시, 또다른 한국의 정통부 장관과 한국통신 사장이 같은 장소에 서서 뉴욕증시 폐장을 알리는 클로징 벨을 울렸다. 인물은 바뀌었지만, 2년1개월 사이에 같은 자리의 한국 대표 두명이 뉴욕 증시의 시작과 마감을 알리는 행사에 참석하도록 배려받았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주식을 새로 상장하는 회사의 대표에게 증시 개장과 폐장을 알리는 타종 기회를 준다. 한국통신은 99년 뉴욕증시에 처녀 상장한데 이어 이번에 2차로 정부지분을 매각한 덕분에 정통부 장관과 한통 사장이 트레이더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을 울리는 영광을 두 번씩이나 가졌던 것이다.
한국정부가 똑같은 국가 재산을 매각하기 위해 뉴욕에 두 번째로 나왔으니 국제 시장의 생리를 잘 이해하면서 보다 좋은 가격에 물건을 팔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한국통신 주식을 두 번 매각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런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먼저 2년 사이의 가격 변동을 보자. 첫 번째 상장에서 한통 주식은 주당 27.56 달러에 발행됐다. 뉴욕증시에서는 한국에서 거래되는 주식을 둘로 나눠 해외주식예탁증서(DR)라는 새로운 증권으로 발행되는데, 두 번째 발행시에는 한국통신 DR 가격이 20.2달러로 뚝 떨어졌다. 2년 사이에 무려 27%나 싸게 팔았던 것이다.
또 1차 상장땐 서울에서 거래되는 주식(원주) 가격보다 20%의 프리미엄이 붙었지만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차엔 서울 주가보다 고작 0.3%의 프리미엄이 붙었지만 뉴욕에 거래되는 DR 종가에 비해 오히려 0.7% 깎아 팔았다.
그러면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 이만한 가격에 판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까. 한국통신측은 세계적인 통신주 침체 국면에서 물량이 전량 소화된데다 국내 원주보다 높은 가격에 발행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NTT 도코모와 영국 보다폰 등 세계적인 통신회사들이 최근 뉴욕에서 2~3% 할인해서 주식을 팔았던 예를 들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과연 그럴까. 한국통신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대비 2.6배나 신장, 10조원을 넘었으며 3,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냈다. 이번 상장 과정을 지켜본 뉴욕증권가의 전문가들은 한국통신 주식이 적어도 30% 정도 싸게 팔렸다고 주장한다. 경쟁국 통신회사들이 적자에 허덕인다고 해서 한국의 우량회사마저 바겐세일에 내다 팔았다는 것이다.
한국통신은 스스로도 당초 6% 정도의 프리미엄을 기대하면서 25억달러 정도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막판에 22억달러에 낙찰했다. 그러면 3억달러는 어디로 날아갔다는 말인가.
여기서 몇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자. 우선 정부가 지나치게 일정에 매여 국가 재산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점이다. 파산 직전에 있는 하이닉스(옛 현대전자)처럼 해외에서 물량 소화가 급한 것도 아닌데도, 뉴욕 증시가 아주 나쁜 시점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몇 달은 지켜보며 시장이 좋아질 때를 기다릴 여유가 있었을터인데 일정에 쫓겨 밀어부쳤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굳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하를 하는 날에 가격 결정을 해야 했느냐는 점이다. 지난달 27일 뉴욕증시는 금리 인하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금리 발표 두시간후에 가격결정 일정을 잡은 것은 어쩌면 도박에 가까운 판단이다. FED는 이날 뉴욕증권가의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에서 금리(0.25% 포인트)를 내렸고 이날 내내 한통 주가는 5% 정도 폭락한채 움직였다. 서울에서 장관과 사장이 왔지만 예정시간인 오후 4시에도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고 데드라인 직전인 밤 11시에 뉴욕증시 종가보다 낮은 가격에 내주고 말았다.
최근 만난 한 금융인은 색다른 지적을 했다. 서울의 결정권자들이 소수의 뉴욕 월가 매니저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고 상황판단과 흥정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IMF를 겪은지 4년이 넘었지만, 한국은 아직도 국제시장에서 봉이 되고 있다는 그의 따끔한 충고가 귓전에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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