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에베레스트에 갔을때 였다. 신년특집 사진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산어귀 마을인 팍딩에서 한국인 3명을 만났다. 그런데 한국인 3명 가운데 한명은 맹인이고 또 한명은 뇌성마비 장애인이었으며 게다가 이들은 20대의 여성이었다. 나머지 한명은 MBC-TV의 카메라맨으로 자신들도 신년특집을 찍기위해 왔다고 했다. 내용은 뇌성마비 장애인이 맹인을 안내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에베레스트를 등산한다는 것이었다. 목적지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로 되어 있었다.
우리일행중 등산전문가인 Y씨는 “장애인들의 에베레스트 등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TV 카메라맨의 질문에 “이건 등산이 아니라 장애인 고문입니다”라고 쏘아 부쳤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MBC-TV팀은 고생끝에 뇌성마비 장애인과 맹인여성을 데리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가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일반 등산객에게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17,600피트(5,340미터)니까 베이스캠프라 해도 백두산 두배의 높이고 미국의 최고봉인 위트니 마운틴보다 3천피트나 더 높으니 말이다.
맹인이 에베레스트에 오른다는 것은 등산계에서는 지금까지 불가능한 영역으로 취급되어 왔었다. 왜냐하면 베이스캠프에서 에베레스트 정상까지의 사이에는 수십개의 빙벽이 갈라진 크레바스가 있기 때문에 맹인이 이 장애물을 감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났다. 지난 5월 24일 콜로라도주 덴버에 사는 에릭 웨헨메이어(33)라는 맹인이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해 “맹인만세, 인간만세”를 시범 보이는데 성공했다.
나는 맹인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는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누가 로프로 몸을 묶어 이끌어 주었거나 셀파들이 손목을 잡고 갔겠지” 하고 반신반의 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난주 발행(6월 18일자)된 시사주간지 ‘타임’은 웨헨메이어의 에베레스트 정상정복을 카버스토리로 다루면서 그가 어떻게 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를 상세히 보도 했다.
사실 히말라야 등반에는 별별 뒷 이야기가 많다. 누구는 정상에 오르지 않고 정상직전에서 돌아왔다는 등의 루머다. 카트만두의 한국식당에 가서 며칠 묵고 있노라면 귀가 의심될 정도의 소문들을 줏어 듣게 된다.
왜 이런 루머들이 생기는가. 정상에 올랐다고 하면서 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내려오다가 굴러 카메라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또 정상의 기온이 너무 추우면 카메라 셔터가 작동되지 않는수도 있다. 그래서 정상을 정복하는 산악인들은 카메라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배에 품고 다닌다. 몇년전 한국의 어느 여대생이 히말라야의 고봉을 정복했다고 신문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이 여대생이 정상정복 사진을 내놓지 못했다. 하산길에 카메라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사람 모양새가 우수워져 계속 루머에 시달리게 된다. 최근 어떤 유명한 산악인은 이같은 루머에 시달려 자신이 과거 정복했던 히말라야 고봉을 다시 정복해 보인 일까지 있었다.
맹인인 웨헨메이어의 케이스는 적어도 이같은 루머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중간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여러명의 카메라맨들이 그의 뒤를 따라 다녔기 때문이다. 웨헨메이어의 위대함은 그가 단번에 에베레스트에 오른 것이 아니라 두달동안 머물면서 여러번 위기상황까지 갔으나 그때마다 실의를 딛고 일어났다는 점이다.
13세때 시력을 잃은 웨헨메이어는 불행을 불행으로 끝낸 사람이 아니라 불행을 자기인생의 새 출발점으로 삼은 사람이다. ‘타임’지는 그가 캠프1에서 크레바스에 빠지고 고소증에 시달려 주변에서 만류했음에도 의지를 꺽지않고 칠전팔기한 과정을 드라마틱 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국맹인협회는 웨헨메이어의 에베레스트 정상정복으로 맹인의 새로운 가능성이 증명되었으며 그를 ‘제2의 헬렌 켈러’라고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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