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발간 6개월만에 100만부 판매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최인호작 장편소설 ‘商道(상도)’ 첫권을 펴들었다. 최인호씨는 역시 아는 게 많고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어쩌면 그렇게 잘 연결할까 감탄하며 이틀 밤을 꼬박 새워 다섯권을 독파했다.
한국일보에 장기연재됐던 이 소설은 200년전 실재 인물인 상인 임상옥의 일생과 현대의 기업인 김기섭의 운명을 오버랩하면서 상업지도(商業之道), 즉 장사의 철학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19세기 평안도 국경도시 의주에서 비천한 상인으로 태어나 중국과의 인삼 교역을 통해 당대의 무역왕으로 이름을 떨친 임상옥의 생애를 추적하며 얘기를 풀어나간다. 임상옥은 스승인 석숭스님이 준 세가지 활구(活句)를 해석하며 상인으로서 인생에 닥쳐온 세 번의 위기를 극복한다. 그 첫째가 ‘죽을 사(死)’ 자로, 죽을 각오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솥 정(鼎)’ 자로, 부와 권력, 명예의 세 가지는 서로 균형을 이뤄야 솥처럼 곧바로 설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활구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로 ‘계영배(戒盈盃)’라는 술잔의 비밀이다. ‘차기를 경계하라’는 의미의 이 잔은 지나친 욕심을 자제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임상옥은 노년에 계영배의 비밀을 터득, 상업에서 이룬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는 스토리다.
최인호씨는 이 소설을 통해 “이데올로기도, 국경도 사라진 경제시대에 임상옥이라는 역사의 인물을 통해 경제의 새로운 철학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인호씨는 임상옥을 따르는 현대의 기업인으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를 만들려다 독일에서 교통 사고로 사망한 기평그룹 총수 김기섭 회장을 등장시켰는데 소설 속의 김기평은 대우그룹의 창업자 김우중씨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작가가 픽션으로 가공하려고 했던 세계적인 상인 김우중의 기업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 김우중씨가 자신의 분신이라며 키워온 대우자동차는 지금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의 인수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단계에서 노조가 이에 강력하게 반대, 한국에서 주요한 사회, 경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대우 문제로 최근 미국에서도 한차례 소동이 벌어졌었다. 지난 5일 대우 노조원 5명이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GM 주주총회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 중 한명이 잭 스미스 회장에게 “한국 경찰이 노동자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폭력을 중단시킬 용의가 없는가”라고 물었다. 답변에 나선 GM의 릭 왜고너 사장은 “우리는 어떠한 폭력도 찬성하지 않으며 한국 국민들이 법을 준수하길 바란다”며 따끔하게 충고했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대우자동차의 해외 매각 여부에 따라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되는 시점에서 노조원들이 인수기업을 찾아가 반대하는 것도 우습거니와 자기 정부에 압력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그러면 대우그룹 창업자는 어떤 상업의 길을 걸었기에 근로자들이 미국에까지 찾아오도록 회사를 망쳤던 것일까. 한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명구를 남긴 김우중씨는 지금 검찰의 수배를 받아 외국을 전전하며 도망다니고 있다. 그는 한국이 IMF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빚더미에 올라있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고 재벌기업들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을 때 홀로 사업을 확장하는 욕심을 부렸다. 한때 대통령 선거에 나가겠다며 정치적 야망을 숨기지 않았던 그는 회계 장부를 조작하고 주식을 타인명의로 위장 보유하는데 특유의 재주를 보였다. 법을 어기고 시장을 속인 그의 상도는 자신의 몰락에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계영배의 비밀은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는 임상옥의 상업 철학을 의미한다. 최인호의 펜 끝에 살아난 조선시대 거상은 물과 같이 평등한 재물을 독점하려 하거나 저울과 같이 정직하지 못한 사업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 비극을 맞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선조가 가르친 상도는 대우그룹의 창업자 김우중씨는 물론이고, 거짓으로 사업을 하는 오늘날의 욕심 많은 기업인들에게 좋은 경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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