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안을 정리하다 아들의 사진첩을 보았다. 미국 올 때 두 돌도 안되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의젓하게 자랐을까. 내 마음엔 만감이 서린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한 달쯤이었을까. 그는 사춘기 때의 버릇으로 외출했다가는 늘 밤이 늦어서야 귀가하곤 했다. 그를 기다리다 지친 어느 날 나는 파르르 분노에 떨었다. 이 녀석이 여전히 그 버릇 못 고치고... 그때까지도 난 그 아이가 못 미더웠다.
어렸을 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꼭 하버드에 가겠다며 매일 성경을 읽고 유대인 동네 학교에서 전교회장을 하기도 해서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더니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사춘기 반항의 낌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지각은 예사고 가끔 결석도 하는가 하면 집에는 으레 밤 아홉시, 열시에나 들어왔다. 외박을 절대 허용치 않아서인지 친구 집에 가서 자려면 전화조차 않고 종적을 감추어 밤새 애를 태웠던 적이 몇 번이던가.
한번은 다음날 정오까지 소식이 없어 바짝바짝 타는 가슴을 견디다 못해 경찰을 불렀다. 실종신고를 하려고. 경찰 두 명이 왱왱대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집에 들이닥쳐 아이의 사진을 달라고 할 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엉엉 울었다. 내 아이의 사진이 벽보처럼 여기저기 붙여지고 바람이 불면 찢어져 너풀거리겠지....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것 같은 아픔에 견딜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 녀석이었다. 천연덕스럽게 "엄마, 나 지금 서브웨이 정거장에 와있어. 데리러 올래요?"한다. 경찰들도 화가 났는지 "단단히 벌을 주라!"고 하고는 가버렸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집에 있으면서 또다시 같은 행태를 되풀이하다니! 어느 날 밤 12시까지 꼬박 기다리던 나는 어슬렁대며 들어오는 아들을 불러 세웠다. "왜 이제야 들어오니? 어디 가서 무얼 했어?" 내 목소리가 고울 리 없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엄마, 난 이제 어른이야. 아이가 아니라고" 나는 오기가 났다. "어른인 녀석이 이렇게 밤늦게 쏘다녀?" 그러자 아이는 소파에 주저앉으며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난 엄마 때문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알아?" 그때까지 난 그 녀석이 내 속을 썩였다고만 생각했었다. 말대꾸나 하고 방은 발디딜 틈도 없이 어질러 놓고 학교를 결석하고 밤늦도록 헤매고 다니고... 열거하자면 한이 없는데 내가 자기에게 상처 주었다니?
멍하고 있는 내 앞에서 아이는 그동안 참았던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엄마,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언젠가 엄마가 날더러 나쁜 자식이라고 했지? 난 절대로 나쁜 자식이 아니야, 절대로 아니라고…"
그때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를 알았다. 화가 난 김에 무심코 한 말이 그 아이에게 그렇게 상처가 되었다니! 끝없이 우는 아들 앞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모르다가 조용히 사과를 했다. "맞아, 넌 절대로 나쁜 애가 아니야. 넌 착한 내 아들이지. 엄마가 그때 화가 나서 말했던 것 뿐이야. 이제부터 다시는 네게 화를 안 낼게. 얘야, 제발 이 엄마를 용서해라"
제발 그 애가 나에 대한 원한을 씻어주길 바라며 나는 아이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 후 나는 1년 동안 울면서 다녔다.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그때까지, 나는 무엇을 해주었단 말인가. 아이가 함께 놀자고 하면 엄마는 지금 바빠하며 저리 가서 혼자 놀라 하고 공부 열심히 안 한다고 소리지르고 방을 어질러 놓았다고 화를 내고 너 혼자 밥 먹어라 하고 나는 밖으로 나가고…
아, 다시 새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다시는 화도 안내고 소리도 안지를 텐데… 떼쓰며 칭얼거리는 아들을 꼭 껴안고 엄마는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그리고 너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소중하고 귀한 선물이라고 매일 매일 속삭여 줄텐데, 함께 달리기도 하고 사춘기의 그 힘든 강을 다 건너기까지 그를 기쁘게 기다려 줄 수 있을 텐데.
아들은 지금 자기 일에 충실하고 명랑하고 활발한 청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어린 시절을 더 아름답게 색칠해 주지 못한 아픔이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아리게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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