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폭투하 56년... 히로시마를 가다
▶ 잿더미 딛고 ‘평화의 도시’ 부활... ‘평화공원’에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1945년 8월6일 아침 히로시마 9,000미터 상공에 나타난 B29에서 한 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순간이 발생함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지상 580미터 상공에서 폭발한 이 폭탄은 순식간에 반경 2킬로미터를 초토화 시키며 7만8,0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등 20여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폐허로 변한 도시를 바라보던 시민들은 평화의 소중함을 뼈 속 깊이 깨달으며 복구작업에 나서 마침내 일본 10대도시중 하나로 재기시켰고 ‘평화의 도시’라는 명성도 얻어냈다.
일본 혼슈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항구도시 히로시마시는 히로시마현의 중심지로 150만명의 시민이 살고 있으며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 마즈다사 생산라인이 들어서 있어 이곳에서 생산된 차량은 곧바로 항구로 이동해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시내는 60년대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구형 노면전차가 도로 한복판을 달리고 있고 주변에는 초현대식 빌딩들로 가득차 있다. 일본 대부분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잘 정돈된 시내는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깨끗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며 각종 편의점과 음식점, 소매점들이 곳곳에 늘어서 지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주오도리와 혼도시로 나눠진 중심부에는 하루종일 인파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지만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재미있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히로시마 주변에는 많은 관광지가 산재해 있는데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평화공원으로 이곳에는 히로시마의 상징물로 원폭의 참상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는 히로시마 산업장려관 건물(겐바쿠도무)이 철골을 그대로 드러낸채 서있다. 다리를 건너 공원안으로 들어가면 1955년 세워진 기념관이 있으며 이곳에는 피폭 당시의 자료 3만여점이 전시돼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수학여행을 온 일본학생들에게 당시의 끔찍했던 순간과 평화의 소중함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다. 특히 공원안에는 원폭으로 목숨을 잃은 2만여명의 한국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데 원래 대한민국 거류민단(민단)에 의해 1970년 4월에 건립됐던 이 위령비는 그동안 공원밖에 있었으나 2년전 현지 재일동포들의 노력으로 공원안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하지만 지난 4월 재일동포 사회를 구성하는 한쪽 기둥인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총련)와 민단이 함께 뜻을 모아 새로 위령비를 세울 것을 합의했으나 민단측 원로들이 이를 반대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히로시마의 또다른 명물은 일본 삼경중 하나인 미야지마 해상국립공원으로 이곳에는 일본의 무사정신이 숨쉬는 이츠쿠시마 신사가 바다에 떠있다. 특히 이곳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적들을 제압한 뒤 조선침략을 위해 수군을 정비해 출병한 곳이기도 하다.
히로시마 한인사회히로시마시에는 약 7,000여명의 재일동포들이 살고 있으며 현까지 포함할 경우 약1만5,000명(히로시마 총영사관은 3만명 추정)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 유학생은 100명 정도로 이중 상당수는 히로시마 국립대학에 재학중인데 이 대학은 교육학 부문에서 일본 최고로 인정받고 있어 일본 문부성의 지원이 크다. 히로시마 재일동포들은 대부분 자영업이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성공사례도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히로시마 상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서한규씨와 ‘백화그룹’ 회장인 권양백씨를 꼽는다. 특히 권씨는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들만을 골라 하면서 현재의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히로시마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민단과 총련간의 갈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지만 지난 5월3일 열린 ‘히로시마 꽃축제’에 함께 참여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민단소속이 전체 히로시마 한인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본 주류사회에 대해 재일동포의 권익을 주장하는 측은 총련이 더 적극적이라고 현지 한인들은 전했다. 히로시마 한인사회의 특징중 하나는 경상북도 합천출신이 유난히 많은 점으로 인근 우지나 항 부근에 사는 한인의 70-80%가 동향이다.
히로시마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고 있는 김근오씨는 "히로시마에 사는 한인들은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정착한 사람들로 강제징용된 사람들은 해방직후 거의 모두 귀국했다"고 소개하면서 "최근 들어 일본에 귀화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으며 일본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전체의 85%에 이르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아키바 타다도시 히로시마 시장 인터뷰"나의목표는 히로시마시를 일본 제일의 도시로 만드는데 있으며 이를 위해 조화와 도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년전 히로시마 시장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활발한 활동으로 지역 주민들의 인기를 한몸에 얻고 있는 아키바 타다도시 히로시마 시장은 히로시마시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사회와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특히 타다도시 시장은 지역 주민들이 시의 발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데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으며 재일동포들에게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재일동포 사회가 민단과 총련으로 갈려 그동안 반목과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작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양측이 함께 ‘원코리아’라는 커다란 틀속에 꽃축제를 개최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같은 화해 분위기가 계속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한때 미국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강단에 서기도 했던 하다도시 시장은 제2회 한민족 포럼이 히로시마에서 열린데 환영을 표시하면서 한때 지구상 최초의 원자탄 피폭지역이라는 역사의 한 단면에서 탈피해 평화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알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통의 김치맛을 일본인들에게 전하는 김영리씨"매일 김치를 담가 백화점에 보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의 맛을 일본인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 시내 한 골목길에서 손님들의 등이 서로 닿을 정도로 작은 불고기 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리씨(45)는 매일 이른 아침 200킬로그램의 김치를 담가 시내 백화점에 납품하고 점심시간부터 밤늦게까지 밀려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피곤함이 풀릴 날이 없지만 손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면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경남 마산출신으로 20년전 일본에 들어와 다른 일을 하다가 7년전부터 한국 전통의 불고기집을 오픈해 장사를 해오고 있는 김씨는 "손님의 거의 대부분이 일본인으로 불고기는 물론 구수한 맛의 된장찌개도 자주 찾는다"며 "손맛으로 만들어 내는 불고기와 김치 때문에 단골손님이 많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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