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침공은 더위만큼이나 빨리 찾아와, 태풍과 장마처럼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일 <진주만> 기습을 신호탄으로 융단폭격이 시작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제작여건상 2년을 주기로 한다. 그래서 지난해 검투사 (<글래디에이터>) 가 고군분투했다면, 올해는 10여편의 초호화 캐스팅, 특수효과, 상상력의 영화들이 대공세를 펼친다. 유일한 상대로 생각했던 <무사>(감독 김성수)까지 가을로 자리를 피해 우리의 여름극장가는 그야말로 그들의 차지다. 오죽하면 자기들끼리 서로 부딪칠까 눈치를 보며 개봉 일정을 조정할까.
무기도 다양하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단골손님인 SF액션은 물론이고, 전쟁영화에 화려한 뮤지컬까지 가세했다. 디즈니의 독차지였던 애니메이션도 3편이나 된다. 그것도 모두 3D(차원)이다. 속편이 많은 것은 할리우드의 소재빈곤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한번 흥행에 성공한 무기보다 더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진주만(Pearl Harbor)>은 25일 미국 전역을 초토화한 후 곧바로 기수를 돌려 아시아를 향했다. 포탄을 따라가듯 실감나게 연출한 일본 폭격기들의 공습. 그 화려한 놀이로 서울 70여개 극장을 점령했다. 3시간 동안의 오락이 지겨울까 봐 사랑도 집어넣었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단선적인 스토리, 액션과 멜로의 엉성한 결합, 미국식 영웅주의와 정의로 그야말로 한번 ‘꽝’ 하고는 사그러들 수도 있다.
오직 볼거리 뿐인 그런 단조로움을 염려해 <미이라2(The Mummy Return)>는 새로운 코드를 추가했다. ‘웃음’ 이다. <미이라 2>는 전편이 기발한 소재와 특수효과, 어드벤처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4억1,400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그것만으로 두 번은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듯, 오코넬과 에블린 부부에 여덟 살 난 아들로 가족을 만들고, 더욱 강력한 죽음의 신 아누비스를 새로 창조했다. 저주받은 마법사 이모텝도 부드러워져 관객들에게 보다 유쾌한 모험을 즐기게 한다.
웃음 하면 <슈렉(Shrek)>이 자신 있게 나선다. 몇 년전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아성에 강력히 도전하는 드림웍스가 이번에는 아예 ‘디즈니 뒤집기’ 를 시도했다. 못생긴 괴물 슈렉과 추녀인 피오드 공주가 벌이는 디즈니 세계관에 대한 조롱과 절묘한 패러디가 너무나 즐겁고 통쾌해 미국에서부터 극장을 웃음바다로 변하게 했다.
콜럼비아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파이널 판타지(FinalFantasy)>도 만만찮다. 동명게임의 제작자 히로노부 사카구치가 감독을 맡은 서기 2065년 보이지 않는 외계 생명체로 인해 멸망해 가는 지구 인류를 구하는 SF 애니메이션이다. 줄거리와 소재는 새롭지 않지만 일본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실사에 가까운 영상을 자랑한다. 이 둘 사이에서 전통적인 노래와 춤 대신 스펙터클한 영상과 환상으로의 모험을 떠나는 <아틀란티스(Atlantis)>가 과연 디즈니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
여전히 할리우드 SF는 강력하고도 다양하다. 시대와 공간, 인간과 로봇 사이를 종횡으로 내닫는다. 올 여름 가장 매력적인 할리우드 여전사는 누가 뭐래도 안젤리나 졸리이다. <툼 레이더(Tomb Raider)>에서 그는 고고학자 라라가 돼 태양계의 힘을 이용해 우주를 정복하려는 고대 비밀조직과 맞서 육감적인몸매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거침없이 총을 쏘아댄다. 20년 전 시간과 우주를 여는 열쇠를 남긴 아버지로 그의 친아버지 존 보이트가 나오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SF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스티븐 스필버그는 한꺼번에 두 작품을 동시에 들고 나왔다. 먼저 그가 총제작을 맡은 <쥬라기 공원3(Jurassic Park3)>은 그 무시무시하고 더욱 영악해진 공룡들이 우글거리는 이슬라소르나 섬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고 직접 감독을 맡은 < A.I (Artificial Intelligenceㆍ인공지능) >로 휴머니즘 넘치는 우주드라마를 펼친다. 그는 2년전 세상을 떠난 SF영화의 선구자 스탠리 큐브릭이 완성하지 못한 시나리오 초고를 갖고 로봇 소년 안드로이드의 ‘진짜 사람되기’ 여행을 시도했다.
뒤질세라 팀 버튼도 자신의 1969년작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을 리메이크했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SF가 오락적이고 희망적인데 반해 어둡고 충격적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팀 버튼은 이 영화에서도 이상한 행성의 정글 늪지대에 빠진 비행사를 통해, 그리고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를 통해, 충격적인 미래의 지구를 보여준다.
과거로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사랑과 노래의 여행은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인 <물랑루즈(Moulain Rouge)>가 맡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바즈 루어만 감독은 100년전 프랑스 파리몽마르트의 사교클럽 여가수와 가난한 시인의 사랑과 비극을 신세대 감각, 만화적 상상력, 20세기 대중음악 스타들의 노래를 절묘하게 연결시켜 신세대감각으로 부활시켰다.
“국내에서 뮤지컬은 안 된다”는 속설이 <어둠속의 댄서>에 이어 또 한번 깨질지. 스토리가 탄탄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화제의 스타 니콜 키드먼이 있다. <클리프 행어> <딥 블루 씨>로 산악과 바다를 누빈 레니 할린 감독이 실베스터스탤론과 손잡고 도로에서 벌이는 스피드 게임 <드리븐(Driven)>도 블록버스터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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