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 시간은 온 식구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날 일어났던 일들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관찰할 수 있고 의견이 충돌될 수 있는 불안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날도 저녁을 먹다가 아내와 의견충돌이 생겼다. 미국에 이민온 후 아내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나의 애인이며 조언자이다. 문제가 생길 땐 변호사나 의사 노릇을 한다. 게다가 우리 집 경제의 반을 담당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인지 지금 기억에 없지만 그날 나는 무척 화가 났다. 큰소리를 지르다 급기야 밥사발을 들어 집어던졌다. 숨 죽이고 그 광경을 보고있던 아이들은 식사를 중단하고 하나 둘 자기 방으로 가버리고 나도 2층 내 방으로 와 씩씩대고 있었다. 문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아내는 어디 나가는 모양이다. 10분이 지났을까 밖에서 경찰차 경적소리가 요란하다. 또 사고가 났나보다 생각했는데 그 소리는 더 요란해지고 여러 대의 차소리가 났다.
2층에서 내려다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차들이 우리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경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복장이 좀 이상하다. 검은색 유니폼에 조끼를 하나씩 입었고 등에는 SWAT라 써 있었다. 벨 소리가 들린다. 우리집이 목표였다. “경찰인데 신고받고 왔다. 내부를 수색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불안한 나는 “집을 잘못 찾은 것 같으니 잘 알아봐라. 우리집은 절대 아니다”고 했다. 좀 계급이 높아 보이는 경찰이 나서더니 “이 집이 틀림없는데 네 아내 좀 보자”고 한다. 지금 집에 없다고 하니 아이들을 보자고 한다. 더욱 불안해진 나는 “그럴 이유가 없다. 굳이 원한다면 영장을 제시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부엌으로 와서 용기를 북돋기 위해 맥주캔을 뜯어 들이마셨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 셋 중에 한 녀석이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다. 겁을 주려고 밥사발을 던지는 것을 본 아이들은 아빠가 엄마를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전화를 건 모양인데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일반 경찰이 아닌 기동타격대가 온 것이다.
조금 있더니 부엌 창문쪽으로 예쁘게 생긴 여순경 둘이 나타났다. 생글생글 웃으며 “아무 염려 말라. 우리들은 당신을 도와주려 왔다”며 “이렇게 많은 병력이 그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듯 하게 생각된 나는 부엌 뒷문을 열었다. 여는 순간 벽 옆에 숨어있던 SWAT 팀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와 우리집을 점령했다.
눈 깜짝 할 사이였다. 그들은 구둣발로 우리집 곳곳을 수색했다. 목표는 불법총기류나 마약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별 소득없이 그들은 부엌으로 다시 와서 음식물과 깨진 밥그릇을 밟고서서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가 맥주캔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더니 경찰들이 갑자기 달라붙어 나에게 수갑을 채웠다.
큰 아이는 멍하니 서서 보고 작은 아이들은 울고불고하는 통에 나는 경찰차에 실려졌다. “200달러 갖고 미국 이민와서 살기위해 별 것 다 해봤는데 종국에는 감옥소 구경도 하는구나” 나는 그들이 하라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옆에 타고 있는 여순경이 내가 “아까는 미안했다. 이것이 우리의 직업이다. 너희 가정과 아이들을 보니 정상적인 가정에 틀림없다. 가정에 불화가 있는 것은 어느 가정에나 있는 일이다. 단,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정폭력으로 죽어가는지 알아달라. 우리는 폭력으로 인한 불상사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화가 나면 아내에게 베개를 던져라, 분노를 발산하는 것이 참는 것 보다 낫다. 그러나 베개 이외의 다른 것으로 표현하면 체포할 수 있다. 우리 남편도 나를 베개로 때린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피검사를 하더니 알콜 농도로 보아 한시간 후에 집으로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그 후도 한두번 더 우리집에서 접시가 날아다니지만 그 보다는 베개가 더 많이 날아다닌다. 어떤 때는 아내도 나에게 베개를 날렸다. 아이들은 다 자라났다. 1,2년 후면 결혼하여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누가 우리를 가정의 불상사로부터 보호해줄 것인가. 사랑은 기술이다. 기술은 훈련이 필요하다. 내 성질 죽이는 훈련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오늘도 베개를 던지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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