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적 계산, 게임 이론, 인터넷 자원 총동원
작년 봄 라스베가스의 ‘비니언스 호스슈’ 카지노에서 벌어진 ‘2000년 세계 포커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 마주보고 앉은 두 선수의 대조는 과히 인상적이었다. 당시 61세던 T.J. 클루티어는 왕년의 풋볼 선수다운 6피트 3인치의 건장한 체격. 하얗게 센 머리를 단정히 빗고 줄담배를 피면서 조종사 스타일 안경 너머로 상대를 면밀히 관찰하며 돈을 걸었다.
마주앉은 37세의 크리스 퍼거슨은 카우보이 스타일이었다. 6피트 1인치의 마른 체구에 검은 카우보이 모자를 깊숙히 눌러 쓴 그는 수염과 머리를 길렀고 반사 선글래스를 써서 물을 들이키느라 종종 쉬면서 칩 무더기를 앞으로 밀어내는 그의 표정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상금 150만달러와 세계 포커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쥘 두 사람중 클루티어는 테이블에 총을 놓고 승자를 가리던 시절부터 도박판에서 잔뼈가 굵은 구식 도박사. 반면 UCLA서 컴퓨터공학/인공지능 박사학위를 받은 퍼거슨은 포커판의 모든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계산한다.
퍼거슨이 세계 포커선수권 대회의 결승전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은 최근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의 카드룸과 토너먼트에서 늘고 있는 신세대 도박사의 도래를 말해준다. 회비 1만달러를 내야 참가할 수 있는, 한 선수가 모든 칩을 따야 경기가 끝나는 이 경기 참가자 중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물리학자, 수학자, 엔지니어들이 드문드문 섞여 자신들이 배운 통계학과 게임 이론을 이 기본적으로 매우 수학적인 게임에 적용했다.
이론과 새 테크놀로지에 밝은 신세대 선수들은 아직 숫자는 적지만 포커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만만치않다. 이들은 새로운 게임 전략 책을 쓰고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을 만들며 다른 선수들의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게임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또 이기고 있다.
인터넷 뉴스그룹 ‘RGP(rec.gambling.poker)’에 참가하는 포커 선수들의 연례 라스베가스 모임을 공동 주최하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마이클 지머스(42)는 “자고로 도박판에선 경험만한 스승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적 수준의 젊은 선수가 드물었지만 요즘은 수학, 확률 및 온라인 포커 자원 덕분에 경험을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학습은 가속화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 포커 게임에 모이게 된 젊은 사람 중에는 1998년에 맷 데이먼과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했던 영화 ‘라운더스’를 보기 전까지는 포커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패트리 프리드먼(24)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의 손자로 서니베일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그는 어릴적부터 게임이라면 즐겼고 수학을 전공한 스탠포드대학 재학시 브리지 클럽을 운영했다. 포커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인터넷으로 연구하고 책도 읽고 카드룸에 가서 실전도 익혔지만 풀타임으로 게임을 할 생각은 전혀 없이 그저 취미로만 즐기려한다.
작년에 라스베가스 올리언스 호텔에서 열린 포커 챔피언 토나먼트에서 24만달러를 딴 스펜서 선(28)도 프린스턴에서 컴퓨터공학 공부를 하며 인터넷으로 브리지를 하다가 5년전부터 포커에 흥미를 느껴 창업회사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베이지역 카드룸에서 실전을 익혀왔다.
포커 실력과 상냥함으로 동료들에게 존경받는 퍼거슨은 1990년대 중반, 인터넷 게임과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 지역 토너먼트를 통해 게임 기술을 연마했다. 퍼거슨은 어머니가 수학 박사이며 게임 이론은 UCLA 수학과의 명예교수인 아버지에게서 배웠는데 어릴적부터 아들 형제를 위해 가정용 전략게임을 사주던 아버지 덕분에 오늘날 그는 전략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LA의 주식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값싼 테크놀러지 주식을 사고 팔아 이익을 내는 그는 여가로 볼룸 댄싱을 즐기고 나머지 시간에는 큰 돈을 걸고 포커를 친다.
퍼거슨에게도 지난 해 경기는 자신의 포커 이론의 힘겨운 테스트였다. 상대가 워낙 만만치 않았기 때문. 다른 정상의 선수들처럼 클루티어 역시 경기 중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는 선수다. 덕분에 여러 포커 토너먼트에서 수백만달러를 번 그는 베이지역 출생이지만 텍사스 리차드슨에 산다. 수십년의 경험으로 상대방의 수를 정확히 읽어내는 ‘감’의 선수로 알려진 그는 포커를 하나의 ‘일거리’라고 생각한다.
반면 말이 적은 이론가 퍼거슨은 확률을 계산한다. 부드럽고 정중하지만 사실 공격적으로 도박하는 그는 포커를 거의 학문 연구하듯 접근한다. 그의 포커는 한수 한수가 말그대로 고도로 계산된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나 컴퓨터 연습과 상관없이, 베테랑 선수나 수학 ‘두뇌’도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운’이다. 지난 봄 퍼거슨과 클루티어의 대결을 결정지은 것도 운이었다. 통계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패로 퍼거슨은 챔피언십 타이틀과 150만달러의 상금을 받았고 클루티어는 2등으로 거의 90만달러를 받았다. 나머지 판돈은 다음 43명의 선수들에게 순위에 따라 나눠졌다.
올해 클루티어와 퍼거슨은 모두 첫날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올해의 타이틀은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의 신진 유망주 카를로스 모텐센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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