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1억4,000만달러를 들이고 하와이의 항공모함상에서 500만달러짜리 초호화판 시사회를 열고 지난 25일 미국개봉에 이어 6월2일 국내 선보이는 영화 <진주만>(Pearl Harbor)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과소비의 표본으로 젊은 감독 마이클 베이가 드라마에는 솜씨가 무디다는 것 또한 다시 한번 증명됐다.
최근 미국과 일본 및 중국 등 아시아 국가간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다룬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일본계 미국인들은 이 영화가 반일감정을 부추길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LA타임스가 보도했다.
2차 대전중 세살짜리가 미국내 일본인 수용소 만자나에 수용됐던 존 타테이시 일본계 미국시민동맹(JACL)회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영화중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가져올지도 모르는 부정적 반응을 막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신문에 따르면 타테이시 회장은 2년전 제리 브루카이머가 <진주만>을 만든다는 보도를 읽자마자 "이거 큰일 났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브루카이머는 성격묘사나 민감성보다는 과장된 특수효과로 유명한 제작자이기때문. 타테이시는 브루카이머가 지나치게 호전적이요 일본 사람들을 극악무도하게 묘사한 영화를 만들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타테이시는 디즈니의 영화담당 회장 리처드 쿡과의 면담을 요청, 자신의 우려를 전달했고 쿡은 일본계 미국인 사회의 감정을 상케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타테이시는 브루카이머를 만났는데 뜻밖에도 브루카이머는 타테이시에 영화 각본까지 줬고 타테이시가 요청한 일부 내용 변경사항마저 들어줬다.
타테이시는 브루카이머에게 진주만 기습때 일본계 미국인의 영웅적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계 미국인 의사가 부상자를 도우려 하는 장면의 삽입을 제의, 이 장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영화에서 일본계 의사는 자기가 도와주려던 해군으로부터 "쪽발이가 나를 건드리는 것 원치 않아"라는 말을 듣는다.
타테이시는 얼마전 완성된 <진주만>을 봤는데 "영화가 일본계 미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분별력 있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한편 타테이시는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 JACL 본부 건물의 보안을 강화했고 또 전미지부에도 주의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LA에 있는 일미 박물관의 크리스 코마이 대변인은 "우리는 <진주만>이 개봉될 때 사람들이 하와이 공습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중에는 일본계 미국인들도 있었으며 그들은 2차 대전중 가장 훈장을 많이 받은 미군들 중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도 미국인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대사의 일부를 고쳐 7월14일 개봉된다.
<진주만>은 어떤 영화인가.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연휴를 맞아 지난 25일에 개봉된 <진주만>은 너무 삶고 튀겨 좋은 맛이 다 빠져버린 대형 터키(Turkey:칠면조-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빈물건을 일컬음)같은 영화다. 이야기와 인물 성격묘사보다는 요란한 액션과 특수효과로 유명한 제작자 제리 브루카이머와 감독 마이클 베이가 ‘바위’와 ‘아마게돈’에 이어 다시 손잡고 만들었다.
돈을 물쓰듯 하는 부잣집 아들의 습작 같은 영화로 직원을 4,000명이나 해고하면서 이런 영화를 위해 하와이의 항공모함상에서 500만달러짜리 시사회를 연 디즈니는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전 미국의 거의 모든 비평가들로부터 한심하다는 평을 받았다. USA투데이는 별4개 만점에 2개를 줬고, 월스트릿저널은 졸리운 만화 같은 영화라고 썼다.
뉴욕타임즈는 인물과 드라마가 약하고 소음의 교향곡 같은 영화라고 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배경으로 두 전투기 조종사의 우정과 같은 여인에 대한 사랑을 그렸는데 상영시간 3시간에서 1시간은 뚝 잘라냈어야 했다. 영화는 두 조종사의 우정과 사랑에 이어 진주만 기습 그리고 지미 두리를 대령(알렉 볼드윈)이 이끄는 미 폭격기의 일본 공습 등 세토막으로 구성됐다.
이 영화의 큰 잘못은 사랑과 우정 등 드라마에 약한 베이감독이 처음 1시간 20여분 동안 별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하면서 질질 끌고 가 보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
테네시에서 함께 자란 레이프(벤 애플렉)와 대니(조시 하트넷)가 함께 전투기 조종사가 돼 둘이 같이 간호장교 애블린(케이트 베킨세일)을 사랑하면서 갈등하는 이야기가 정열도 또 분명한 맺고 끊음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짜증이 난다.
레이프가 영국 공군에 지원, 독일기와 싸우다 실종되면서 미국에 남은 대니와 애블린이 사랑을 하게 되고 진주만 공격 전날 느닷없이 레이프가 다시 나타나면서 엮는 사랑에 울고 우정에 울고 하는 식의 신파극이 가소로울 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타이타닉>및 ‘멤피스 벨르’등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조금씩 빌려와 만든 작품 같은데 한스 지머의 음악마저 징징 울어대면서 헛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영화가 나쁜 것은 1차적으로 각본에 책임이 있다. 이 영화의 글은 랜달 윌리스(브레이브 하트)가 썼는데 대사가 어찌나 유치하고 진부한지 실소가 터져 나오는데 글 전체가 너무 약해 이야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처음 1시간20여분동안 보는 사람의 진을 빼놓은 뒤 마침내 시작되는 특수효과에 의한 기습장면은 그런대로 볼 만하다. 그러나 공습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막상 요란한 액션신이 펼쳐져도 흥분할 기력이 없다.
히틀러의 열변 같이 호전적이요 모병광고 같은 영화로 배우들간에 화학작용도 전무하고 연기들도 아마추어 수준. 재미없는 영화로 관람을 권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박흥진 <한국일보 LA미주본사편집위원ㆍLA영화비평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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