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행정부 최고위직 임명 한인, 전신애 여성실장 인터뷰
부시행정부 들어 공직자중 한인여성으로는 최고위직으로 차관보급인 연방 노동부 여성실장에 임명된 전신애(58)씨. 그는 이민 1세대로 동양계 여성, 특히 한인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메인 스트림에 진출한 모범 케이스로 꼽힌다.
그는 이번 센서스 집계결과 미국내 한인이 100만명을 돌파한 것과 관련, 10년후에는 한인 2세들의 정관계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한인들이 경제적 안정을 이뤘다고 해도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한인을 위한 정책입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 참여해줄 것을 당부했다.
부시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지난 13일 상원 인준을 거친 그는 여성의 근로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국을 총지휘 하고 있다.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근처 연방 노동부 빌딩내에 위치한 여성국은 72명의 직원과 10개의 지역사무소를 관할하고 있다.
다음은 전실장과의 일문일답.
▲한인 이민1세 여성으로 부시 행정부 들어 최고위직에 임명된 걸 축하한다.-우선 부시 대통령과 일레인 차오 노동부 장관에게 감사하며 성원해준 한인동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싶다. 앞으로 4년동안 부시행정부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전신애라는 개인의 영광이라기 보다는 한인 커뮤니티의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연방공직 진출이 앞으로 소수계, 특히 우수하고 모범적인 한인인재가 발굴돼 정계진출을 하는데 물꼬가 되길 바란다. 클린턴 8년임기 동안 총 7명의 아시아계가 주요공직에 임명됐지만 부시 행정부에서는 12명의 아시아계가 등용됐다. 부시 행정부의 소수계 등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대선때 공화당 멤버로서 어떤 활동을 했나.-91년부터 99년까지 일리노이 주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후 지난 대선때 일리노이주의 공화당 부시-체니 캠프 아시안-아메리칸 선거본부의 코디네이터겸 부본부장(Co-Chair)으로 활동했다.
선거때 마다 각 정당 사무실에는 ‘폰 뱅크(Phone Bank)’가 설치돼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속한 정당의 후보 지원을 호소하는데 이곳에 참여하는 아시안계가 매우 드물다. 앞으로 한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지난해 인구 센서스 결과, 미주 한인이 100만을 넘었다. 앞으로 한인의 위상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예견하는지.-최근 인구센서스 결과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책 결정에 있어서도 소수계를 위한 정책 입안에 점점 비중을 두고 있는 추세다. 특히 한인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표에 참가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유권자의 표다.
지난해 미국 대선처럼 표 차이가 아주 미약할 때는 소수계가 당락을 좌우하는 스윙 보트(Swing Vote)를 쥐게 된다. 타커뮤니티와 비교했을 때 한인들의 교육정도가 높고 경제적으로 자립을 했다해도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정책입안 등에 반영되지 않는다.
▲한인 2세 정치지망생들에게 롤-모델(Role- Model)이 되고 있는데 그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생업에 바빴던 한인들의 생활이 안정권에 접어 들며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후에는 행정부 관리를 비롯한 정계에 한인 2세의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민생활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좋은 점도 있지만 훨씬 힘든게 많다. 부정적인 것에 매달리기 보다는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도록 항상 준비된 자세와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두 자녀를 키운 어머니로서 한인 학부모들에 대한 조언은. -대부분의 한인부모들은 미국이민 이유로 자녀교육을 첫째로 꼽는다. 그러나 정작 부모들은 생업에 바빠 미 주류사회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만큼 중요한 게 없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하면서도 미 주류사회에 참여하는 의식이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동포들이 한국말, 한국음식, 한국비디오등 생활상의 폐쇄성에서 탈피, 아무리 바빠도 자녀가 재학중인 학교의 PTA모임이나 이웃 커뮤니티 모임 등 지역사회에 참여,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미국에 사는 한인이 건전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어를 열심히 배워 힘을 기르고 이웃과 함께 하는 커뮤니티 봉사정신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래야 자녀들이 부모의 영향을 받아 미국생활에 자신감을 갖고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다.
▲한인여성들의 대다수가 맞벌이 부부다. 일하는 엄마(Working Mother)로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고 또 자신을 지켜냈나.-나 역시 한국에서 살았다면 가정주부로서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가로막는 동성동본 불혼의 장벽을 넘어 1965년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지금은 성인이 된 두 아들이 갓 태어나서 킨더가든에 들어갈 때까지 5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던 적도 있다. 이곳에서 살아갈 아이들이므로 자발적이며 독립적인 아이들로 키우려고 애썼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엌일은 남편이 거의 도맡아 도와줘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남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남편의 협조와 배려없이 아이를 둔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면 남편과 잘 자라주는 아이들이 고마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가족이란 기쁨 뿐만이 아닌 고통, 슬픔도 같이 ‘나누는(Share)’ 것 아닌가.
▲일상생활은 어떤가. -시카고에 머물고 있는 남편(전경철 박사, 64, 국립 아르곤 연구소 대기공학 연구부장)과 주말부부로 지낸다. 내가 상원의 인준을 거치자 남편의 직장에서 워싱턴 지부로 발령을 내 줘 2~3주 후면 남편과 이곳 알링턴에서 지내게 된다.
너무 바빠서 시간을 잘 내지는 못해도 테니스를 즐겨 친다. 시카고에 있을 때는 ‘Saterday Woman`s Tennis Team’ 에 가입해 열심히 테니스를 쳤다. 그리고 4년간 열심히 일한 후 임기를 마치면 그간의 미국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엮어볼 생각이다.
전신애 실장은 누구인가. 경남 마산 출신인 전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65년 유학으로 도미,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84년 일리노이주 아시아 담당 보좌관, 89년 주 금융 규제부 장관, 91년부터 99년까지 주 노동부 장관등을 역임했다. 2년전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시카고 ITR사의 상무로 근무했으며 90년 ‘자랑스런 시카고 여성인상’을 수상하기도. 96년에는 ‘뚝심좋은 마산색시 미국장관 10년 해보니’를 출간, 베스트 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인터뷰: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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