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 역사내용의 큰 변화는 황국사관의 기본으로 신격화된 천황이 보통인간으로 격하된 사실(史實)이다. 그러나 그들의 한국 역사 인식과 한일관계사는 변하지 않았다. 1972년 도쿄대학에서 열린 조선사 연구대회에서 일본학자들은 일본인이 일본 역사를 올바르게 알려면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올바른 한국 역사상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왜곡되고 누락된’ 한국 역사를 정직,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학생, 교사, 사회인 모두에게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을 같이 하였다. 이러한 목적으로 1974년 조선사연구회가 편찬한 ‘조선의 역사’에서는 19명의 역사학 교수들이 비교적 성실하고, 솔직하게 왜곡, 누락된 역사 부문과 일본인의 역사인식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어 최근의 ‘새 역모’가 시도한 왜곡과 큰 대조가 되기에 요약하여 본다.
『유구한 고대 원시시대 일본과 한국은 대륙으로 연결되었고, 구석기시대(약 10만년전)부터 인간의 왕래가 있어 일본 원시사회, 고대 국가 형성과 문화창조에 한국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이며 이를 입증하는 문화유적과 유물은 일본 전국에 무수히 남아있다. 일본 고대사 구성에 한일관계, 한국인의 역할을 누락, 왜곡해서는 이해와 성립자체가 안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본 전통학설은 4세기 중반 일본 야마도 정권이 신라, 고구려와 대치했다는 근거가 빈약한 학설이다. 한국학자 반론은 고대 한인이 일본에 이주, 삼한 삼국의 분국을 세웠고 야마도 정권은 이를 탄압하기 위하여 일본열도 안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주장이다. 이 상반된 학설은 만일 일본 학설이 거짓이라면 일본 고대사 체계 전체를 바꿔야할 심각한 문제이다. 일본은 선사시대부터 한국의 문화, 학문을 받아 일본문화의 기초와 내용을 충실히 하였음에도 일본인들 중에는 왜곡된 역사교육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선입관을 갖고 있어 일본에 전수된 문화는 한국문화가 아닌 한국 경유 중국문화이며 한국은 단지 교량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본식민지 시절 한국역사 연구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의 독점무대로 그들의 한국사 체계와 전체상은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한국은 무기력하고 자력만으론 살 수 없는 쓸모 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심는 데만 주력했다. 일본과 한국은 동조동원(同祖同源)이며, 고대로부터 한국은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고, 한국역사란 대륙 세력간의 지배권 쟁탈경쟁의 역사에 불과하다는 왜곡된 황국사관의 논리로 조선총독부는 임나일본부의 부활이며, 한국 합병은 천황의 은혜로 한일관계를 고대의 원위치로 환원시켰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이런 역사 교육을 받은 일본인은 한국인에 대한 부당한 우월감, 지배자 의식, 차별감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 일본은 민족정신(혼) 교육을 통해 국민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무시켜 소수세력으로 대중 전체를 벼랑끝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적 국민기질과 사회성향을 대륙침략 전쟁, 제국주의 황국사관 수립에 십분 이용하였다. 이번 역사 왜곡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있으며, 그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는 장기경제 불황으로 기업 도산, 실업자 증가, 사회불안, 국가부채 증가(국내 총생산고 대비 200%, 미국 20%, 한국 38%)로 국민사기 저하를 이용한 우익단체 선동에 아름다웠던 과거의 향수에 젖어 현실을 도피하려는 노인 중년층의 호응이다.
둘째는 노·장년층의 사회상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이다. 이들은 전후 폐허의 잿더미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룩한 80년대 기적이 무너지는 이유는 민족정신 쇠퇴, 청소년들의 급격한 서구사상 신봉으로 윤리도덕 실종, 경로사상 부재가 원인이라고 믿고 있어 과거의 질서, 전통, 도덕이 존재하는 사회를 갈망하는 사고가 점차 일본인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
셋째는 국민 불만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정치인의 무책임한 언행이다. 신임 고이즈미 총리는 평화 헌법을 개정, 자위대 해외출병을 합법화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바 있다. 실제로 말이 자위대지 연 450억달러(54조원)란 막대한 국방비와 최첨단 비행기와 함정을 보유하고 있어 그들의 해외 파병도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리라 믿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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