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워싱턴DC에 들렀을 때 꼭 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앨링턴 국립묘지에 있는 케네디 대통령의 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케네디 묘가 아니라 그 옆에 묻혀있는 재클린의 묘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재클린의 묘비에 그의 이름이 어떻게 새겨져 있느냐 였다. 왜냐하면 재클린은 오나시스와 재혼 했었고 모든 행사에서 last name이 오나시스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나시스’라는 성을 가지고 첫 남편인 케네디 옆에 묻힌다는 것은 동양윤리의 프리즘을 통해 본다면 어색한 일이다. 묘비에는 이렇게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
묘한 것은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라는 이름은 한줄로 되어있고 그 아랫줄에 오나시스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점이다. 재클린의 성이 ‘케네디’처럼 보이고 ‘오나시스’라는 성은 어디서 빌려와서 밑에 받혀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케네디 대통령의 묘비에는 ‘존 핏처랄드 케네디’라고 한 줄로 이름이 새겨져 있어 재클린의 이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재클린의 묘비는 케네디 가족들이 ‘오나시스’라는 이름 처리가 얼마나 부담스러웠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재클린의 일생은 미국문화(culture) 연구의 표본이 될만한 케이스다. 케네디의 아내로 10년, 케니디의 미망인으로 5년, 오나시스 아내로 5년, 오나시스 미망인으로 10년 그리고 보석상 거부인 템플즈맨의 동거여인으로 10년이다. 이름으로 계산하면 ‘미세스 케네디’로 15년, ‘미세스 오나시스’로 25년동안 미국의 사교계에서 꽃을 피운 여성이다.
미국에 오래 살다보니 어느정도 미국문화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는데 재클린의 일생을 둘러싼 미국인의 가치판단과 윤리관에 대해서는 아직도 헷갈린다. 재클린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다섯가지다.
첫째, 미국 대통령 미망인 그것도 다름아닌 케네디 대통령 미망인이 자기보다 22세나 늙은 그리스 부호와 재혼한 사실이고 둘째는 오나시스와 결혼한 후에도 케네디 집안의 모든 중요한 행사에 참석했는가 하면 왕년의 시어머니였던 로즈 케네디에게 찾아가 오나시스와의 결혼생활을 의논한 점이다. 셋째는 오나시스가 사망한 후 보석상 거부인 템플즈맨과 결혼식도 안 올리고 동거생활을 했으며, 넷째 그가 암으로 죽게되자 첫 남편인 케네디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 점이다. 한국에서 재혼한 여인이 다시 다른 남자와 동거생활까지 하다가 첫 남편 옆에 묻히겠다고 한다면 상대방 유가족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 무슨 얼굴로…” 해가며 말이다. 다섯번째는 동거남성인 템플즈맨도 재클린이 케네디 옆에 묻히도록 적극 도왔고 케네디 묘 앞에서 펼쳐진 장례식에서는 조사까지 낭독한 사실이다. 위의 다섯가지는 동양인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안되는 미국문화다. 한국 남성들은 자기가 죽은 후 재혼한 아내가 자기 옆에 묻힌다고 하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재클린의 유품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 전시회 명칭은 ‘재클린 케네디-백악관 시절’로 되어 있다. 케네디라는 성을 쓴 대신 ‘백악관 시절’이라는 부제를 달아 오나시스라는 성을 슬쩍 빼버렸다. 이 전시회에는 재클린이 퍼스트 레이디 시절 입었던 드레스 80점이 선보이고 있다. 코너 곳곳에 당시의 백악관 생활이 비디오로 비쳐지고 있어 케네디 시대가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도록 분위기를 꾸며 놓았다.
재클린·부비에·케네디·오나시스 - 그는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오나시스와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애정없는 결혼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알수 있다. 오나시스라는 이름은 재클린에게 있어 홍역 앓은 자국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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