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전주영화제의 ‘오마쥬’부문에 기획된 라이너 베르히너 파스빈더 회고전을 서울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아트선재센터는 전주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후원으로 4일부터 13일까지 열흘간 파스빈더의 대표작을 상영한다.
뉴저먼 시네마의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파스빈더는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나 37세에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할때까지 모두 29편의 장편영화를 발표했다. 이번 회고전에는 <카젤마허>(1969)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3)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8) <케렐>(1982)등 모두 16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다목적 공영장이던 ‘아트홀’의 개념에서 시네마테크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를 지난해 12월부터 가져왔던 아트선재센터(733-8949)의 이번 회고전은 개관이래 가장 많은 장편영화를 선보이는 것이다. 이번 상영과 함께 독일 괴테 인스티튜트의 프로그래머이자 파스빈더와 함께 저술과 활동을 한 한스 귄터 플라움의 ‘파스빈더와 영상언어’라는 주제강의가 4일 오후 6시 ‘폰타네의 에피 브리스트’영상을 보면서 열린다.
또한 아트선재는 관람료의 구분화를 통하여 ‘예술영화보기’의 활성화를 꾀했다. 일반인은 5,000원을 받지만 단체 4,500원, 학생 4,000원으로 구분하였다. 영상관련학과의 학생인 경우 학생증을 제시하면 3,000원으로 할인해준다.
파스빈더의 생애는 끝없는 애정에의 갈망,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는 비판으로 채워진다. 오늘 파스빈더를 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파스빈더가 그의 동료들과 같이 외치던 ‘오버하우젠 선언’은 독일의 단편영화와 신진작가들이 막 활동의 영역을 뻗치던 시기다. 그들은 아버지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었다. 물론 파스빈더에겐 존 포드와 더글라스 서크, 아르토와 브레히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우리의 영화는 지금 또다른 황금기를 맞고 있다.
60년대 홍콩감독들이 한국을 찾은 것처럼 외국의 영화감독들이 한국을 다시 찾으려 하고, 한해에 500여편의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 한국은 영화의 나라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를 한번쯤 뒤돌아 볼 시점. 한국영화의 저력이라기 보다는 자본이 미디어를 원하기때문이다.
그러한 자본은 언젠가 또다른 시장을 찾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시점에서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독일 영화의 저력을 독특하게 만들어낸 한 천재의 영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파스빈더는 독일 부르조아 사회와 더 나아가 인류의 한계를 가차없이 공격했다. 그의 영화들은 사랑과 자유에 대한 절박한 갈망 그리고 사회와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그런 갈망을 좌절시키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죽음보다 차가운 사랑>(1969)와 <사랑만이라도 해줘>(1976)가 그것. 그의 주인공들은 남자 건 여자건 지나치게 순진한 경향이 있어서, 자신들의 낭만적 환상의 어리석음을 거칠게 때로는 잔혹한 방식으로 깨우치게 되고 이는 사회적이고 철학적 현상을 위협하게 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3)에선 근육질에 연하인 흑인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하는 외로운 백인 과부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악의에 찬 반응을 보여준다.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를 착취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야 가련한 엠미의 범죄를 용서해준다.
<마르타>(1973)에선 삶에 굶주린 충동적 여자가 부유하고 교양 있는 헬무트와 결혼하는데 그는 그녀의 제멋대로인 행동과 무지 그리고 단순한 자의식을 싫어해서 그녀를 자신의 부르주아 세계의 반영으로 개조하려고 한다.
파스빈더는 헬무트의 성공을 빈틈없는 영상으로 나타내고 있다. 둘이 대화하는 동안 카메라는 헬무트가 마르타를 완전히 가려 버릴때까지 그 방을 정교하게 움직인다. 이 영화는 도한 영화사상 가장 비참한 장면 중의 하나를 보여주기도 한다.
헬무트는 마르타를 햇볕속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도록 강요한다. 그는 마르타의 햇볕에 너무 타서 벌겋게 된 나체에 너무나 흥분해서 고통에 찬 비명을 무시한 채 그녀를 강간한다. ‘폭스와 그의 친구들’(1974)에선 역겹게 교양 떠는 여왕이 사랑스럽지만 순진한 노동계급의 동성애자를 파괴시킨다. 그녀는 그 남자의 복권당첨금을 가로채고 그를 고급스런 상류 계급 틀에 맞추려고 한다.
박연우기자 y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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